구마라집 법사는 반야심경의 정종분을 300자로 번역하여 비교적 그 뜻을 이해하기
쉽게 하였고
반야와 이언은 서분 정종분 유통분까지 모두 546자로 번역하였습니다.
현장 삼장은 정종분을 260자로 번역 하였는데 지금 우리가 독송하는 본이 현장의
번역본입니다.
구마라집 번역본
마하반야바라밀대명주경(摩訶般若波羅蜜大明呪經)
큰 반야로 저 언덕에 건너가는 제일 밝은 주문의 경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행심반야바라밀시(行深般若波羅蜜時),
조견오음공(照見五陰空),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
관세음보살이
‘깊은 반야로 저 언덕에 건너감’을 수행할 때,
오음이 공성임을 관조하여 깨닫고,
일체 중생의 괴로움과 멍에를 벗어나게 하셨다.
사리불(舍利弗),
색공고 무뇌괴상(色空故 無惱壞相).
수공고 무수상(受空故 無受相).
상공고 무지상(想空故 無知相).
행공고 무작상(行空故 無作相).
식공고 무각상(識空故 無覺相).
사리불이여,
물질의 쌓임은 공성이므로 부서짐을 괴로워할 모양이 없는 것이다.
감수의 쌓임은 공성이므로 느낌이라는 모양이 없는 것이다.
상상의 쌓임은 공성이므로 앎이라는 모양이 없는 것이다.
의지의 쌓임은 공성이므로 지음이라는 모양이 없는 것이다.
심식의 쌓임은 공성이므로 깨달음도 모양이 없는 것이다.
하이고, 사리불(何以故, 舍利弗),
비색이공, 비공이색(非色異空, 非空異色),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수상행식, 역부여시(受想行識 亦復如是).
왜냐하면, 사리불이여,
물질의 쌓임은 공성과 다르지 않으며,
공성은 물질의 쌓임과 다르지 않으니,
물질의 쌓임은 곧 공성이요,
공성은 곧 물질의 쌓임이다.
감수의 쌓임, 상상의 쌓임, 의지의 쌓임,
심식의 쌓임도 또한 다시 이와 같다.
사리불(舍利弗), 시제법공상(是諸法空相),
불생불멸(不生不滅), 불구부정(不垢不淨), 부증불감(不增不減).
시공법, 비과거, 비미래, 비현재(是空法, 非過去, 非未來, 非現在).
사리불이여, 이 모든 법의 공성의 모습은
생겨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다.
이 공성이라는 법은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현재도 아니다.
시고 공중무색(是故 空中無色), 무수상행식(無受想行識).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
무색성향미촉법(無色聲香味觸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무무명 역무무명진(無無明, 亦無無明盡),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무고집멸도(無苦集滅道). 무지 역무득(無智 亦無得).
그러므로 공성 가운데는 물질이라 할 것이 없고,
감수, 상상, 의지, 심식이라
할 것이 없다.
눈, 귀, 코, 혀, 몸, 마음이라 할 것이 없고,
물질, 소리, 냄새, 맛, 촉감, 법이라
할 것이 없다.
눈의 경계라 할 것이 없고,
내지 심식의 경계라 할 것이 없다.
무명이라 할 것이 없으니, 또한 무명이 다할 것도 없고,
내지 늙고 죽음이라
할 것이 없으니,
또한 늙고 죽음이 다할 것도 없다.
괴로움, 괴로움의 원인, 열반, 열반의 도라 할 것이 없다.
지혜라 할 것이 없으니, 또한 얻을 것도 없다.
이무소득고(以無所得故), 보살(菩薩),
의반야바라밀고(依般若波羅蜜故), 심무가애(心無罣碍).
무가애고 무유공포(無罣礙故 無有恐怖),
이일체전도몽상고뇌(離一切顚倒夢想苦惱) 구경열반(究竟涅槃).
얻을 것이 없기 때문에, 보살은
‘반야로 저 언덕에 건너감’에 의지하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다.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고,
일체의 전도와 몽상과 고뇌를 멀리 떠나
궁극의 열반에 들어간다.
삼세제불(三世諸佛),
의반야바라밀고(依般若波羅蜜故),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삼세의 모든 부처님도 ‘반야로 저 언덕에 건너감’에 의지하므로
위없는 보리를
증득하신다.
고지(故知).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
시대명주(是大明呪), 무상명주(無上明呪),
무등등명주(無等等明呪),
능제일체고, 진실불허(能除一切苦, 眞實不虛).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반야바라밀’은 제일 밝은 주문이며,
위없는 밝은 주문이며,
견줄 것이 없고 평등한 밝은 주문이어서,
일체 중생의 괴로움을 없애주니,
진실하여 헛되지 않은 것이다.
고설 반야바라밀주(故說 般若波羅蜜呪),
즉설주왈(卽說呪曰).
『가테가테(竭帝竭帝),
바라가테 바라승가테(波羅竭帝 波羅僧竭帝),
보리승바하(菩提僧婆訶).
』
끝으로 ‘반야바라밀’의 주문을 찬탄하니,
바로 설하여 게송으로 말하겠다.
『가테가테, 바라가테 바라승가테, 보리승바하.』
반야와 이언의 공동번역본
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蜜多心經)
반야로 저 언덕에 건너가는 핵심의 경
서분(序分)
여시아문(如是我聞). 일시, 불재왕사성기사굴산중(一時, 佛在王舍城耆闍崛山中),
여대비구중 급보살중구(與大比丘衆 及菩薩衆俱). 시, 불세존(時, 佛世尊), 즉입삼매,
명광대심심(卽入三昧, 名廣大甚深).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기사굴산에 계셨는데, 큰 비구 대중
및 보살 대중과 함께 하셨다. 그때 부처님께서 곧 삼매에 들어가시니, ‘넓고 크고 매우
깊은 삼매’라고 이름한다.
정종분(正宗分)
이시, 중중유 보살마하살(爾時, 衆中有 菩薩摩訶薩),
명관자재(名觀自在), 행심반야바라밀다시(行深般若波羅蜜多時),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 이제고액(離諸苦厄).
그때 대중 가운데 대보살이 계셨는데,
관자재라고 이름하며,
‘깊은 반야로 저 언덕에 건너감’을 수행할 때,
오온이 모두 공성임을 관조하여 깨닫고,
모든 중생의 괴로움과 멍에를 벗어나게 하셨다.
즉시, 사리불(卽時, 舍利弗), 승불위력(承佛威力), 합장공경(合掌恭敬), 백관자재보살
마하살언(白觀自在菩薩摩訶薩言), 선남자(善男子), 약유욕학 심심반야바라밀다행자
(若有欲學 甚深般若波羅蜜多行者), 운하수행(云何修行).
곧 사리불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이어받아, 합장하고 공경하며 관자재보살 대보살께
여쭈어 말하기를, “선남자가 ‘매우 깊은 반야로 저 언덕에 건너가는 행’을 배우려고
한다면 어떻게 수행해야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여시문이(如是問已), 이시, 관자재보살마하살(爾時, 觀自在菩薩摩訶薩), 고구수
사리불언(告具壽 舍利弗言). 사리불(舍利弗), 약선남자 선여인(若善男子 善女人),
행심심반야바라밀다행시(行甚深般若波羅蜜多行時), 응관오온성공(觀五蘊性空).
이와 같이 질문을 마치자, 그때 관자재보살 대보살이 구수 사리불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사리불이여, 선남자 선여인이 ‘매우 깊은 반야로 저 언덕에 건너가는 행’을 수행할 때는
마땅히 오온의 성품이 공함을 관해야 한다.
사리불(舍利弗),
색불이공, 공불이색(色不異空, 空不異色),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수상행식, 역부여시(受想行識, 亦復如是).
사리불이여,
물질의 쌓임은 공성과 다르지 않으며,
공성은 물질의 쌓임과 다르지 않으니,
물질의 쌓임은 곧 공성이요,
공성은 곧 물질의 쌓임이다.
감수의 쌓임, 상상의 쌓임, 의지의 쌓임,
심식의 쌓임도 또한 다시 이와 같다.
사리불(舍利弗), 시제법공상(是諸法空相),
불생불멸(不生不滅), 불구부정(不垢不淨), 부증불감(不增不減).
사리불이여,
이 모든 법의 공성의 모습은
생겨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다.
시고, 공중무색(是故, 空中無色),
무수상행식(無受想行識).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
무색성향미촉법(無色聲香味觸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무무명 역무무명진(無無明, 亦無無明盡),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무고집멸도(無苦集滅道). 무지 역무득(無智 亦無得).
그러므로 공성 가운데는 물질이라 할 것이 없고,
감수, 상상, 의지, 심식이라
할 것이 없다.
눈, 귀, 코, 혀, 몸, 마음이라 할 것이 없고,
물질, 소리, 냄새, 맛, 촉감, 법이라
할 것이 없다.
눈의 경계라 할 것이 없고,
내지 심식의 경계라 할 것이 없다.
무명이라 할 것이 없으니, 또한 무명이 다할 것도 없고,
내지 늙고 죽음이라
할 것이 없으니,
또한 늙고 죽음이 다할 것도 없다.
괴로움, 괴로움의 원인, 열반, 열반의 도라 할 것이 없다.
지혜라 할 것이 없으니, 또한 얻을 것도 없다.
이무소득고(以無所得故), 보리살타(菩提薩埵),
의반야바라밀다고(依般若波羅蜜多故), 심무가애(心無罣碍).
무가애고 무유공포(無罣礙故 無有恐怖),
원리전도몽상(遠離顛倒夢想) 구경열반(究竟涅槃).
얻을 것이 없기 때문에, 보리살타는
‘반야로 저 언덕에 건너감’에 의지하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다.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고,
전도와 몽상을 멀리 떠나 궁극의 열반에 들어간다.
삼세제불(三世諸佛),
의반야바라밀다고(依般若波羅蜜多故),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삼세의 모든 부처님도
‘반야로 저 언덕에 건너감’에 의지하므로
위없는 보리를 증득하신다.
고지(故知). 반야바라밀다주(般若波羅蜜多呪),
시대신주(是大神呪), 시대명주(是大明呪),
시무상주(是無上呪), 무등등명주(無等等明呪),
능제일체고, 진실불허(能除一切苦, 眞實不虛).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은 제일 신령한 주문이며,
제일 밝은 주문이며, 위없는
주문이며,
견줄 것이 없고 평등한 밝은 주문이어서,
일체 중생의 괴로움을 없애주니,
진실하여 헛되지 않은 것이다.
고설 반야바라밀주(故說 般若波羅蜜多呪),
즉설주왈(卽說呪曰).
아제아제(揭諦揭諦),
바라아제 바라승아제(波羅揭諦 波羅僧揭諦),
보리사바하(菩提娑婆訶).
끝으로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을 찬탄하니,
바로 설하여 게송으로 말하겠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리사바하.』
유통분(流通分)
여시, 사리불(如是, 舍利弗), 제보살마하살(諸菩薩摩訶薩),
어심심반야바라밀다행(於甚深般若波羅蜜多行), 응여시행(應如是行).
이와 같으니, 사리불이여, 모든 보살과 대보살들은 ‘매우 깊은 반야로 저 언덕에
건너가는 행’을 마땅히 이와 같이 수행해야 한다.
여시설이(如是說已), 즉시세존(卽時世尊), 종광대심심삼마지기(從廣大甚深
三摩地起), 찬관자재보살마하살언(讚觀自在菩薩摩訶薩言). 선재선재(善哉
善哉). 선남자(善男子), 여시여시(如是如是). 여여소설(如汝所說), 심심반야
바라밀다행甚深般若波羅蜜多行), 응여시행 (應如是行). 여시행시(如是行時),
일체여래 개실수희(一切如來 皆悉隨喜).
이와 같이 설하고 마치시자, 곧 부처님께서 ‘넓고 크고 매우 깊은 삼매’로부터
일어나시어, 관자재보살 대보살을 칭찬하며 말씀하시기를, “착하고 착하다.
선남자여, 이와 같고 이와 같은 것이다. 그대가 말한 바와 같이 ‘매우 깊은 반야로
저 언덕에 건너가는 행’은 마땅히 이와 같이 수행해야 한다. 이와 같이 수행할 때
일체의 부처님도 모두 다 따라서 기뻐하실 것이다.”라고 하셨다.
이시, 세존설시어이(爾時, 世尊說是語已), 구수 사리불 대희충변(具壽 舍利弗
大喜充遍), 관자재보살마하살 역대환희(觀自在菩薩摩訶薩 亦大歡喜). 시피중회
(時彼衆會) 천인 아수라 건달바 등 문불소설(天人 阿修羅 乾闥婆 等 聞佛所說),
개대환희 신수봉행(皆大歡喜 信受奉行).
그때 부처님께서 이러한 말씀을 설하여 마치시니, 비구 사리불은 큰 기쁨으로 충만
하였고, 관자재보살 대보살도 크게 기뻐하셨다. 당시 저 대중에 모인 천인과 사람들
아수라 건달바 등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모두가 크게 기뻐하며 신심으로
받아 지니고 받들어 실천하였다.
<옮겨 온 글>
출처 :행복으로 가는 징검다리 !... 원문보기▶ 글쓴이 : 벽공하심
'불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금 현재에도 너무 집착하지 말라 (0) | 2016.11.10 |
---|---|
믿음은 도의 근본 공덕의 어머니라 (0) | 2016.11.10 |
지혜로운 사람은 어느 때나 분노하지 않는다 (0) | 2016.10.24 |
십념염불 (0) | 2016.10.22 |
참된 인욕의 실천방법/법상스님 (0) | 2016.1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