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無所見無分別 (목무소견무분별)이고
耳聽無聲絶是非 (이청무성절시비)로다
分別是非都放下 (분별시비도방하)하니
但看心佛自歸依 (단간심불자귀의)니라
- 부설거사 -
눈으로 보는 바가 없으니 분별할 것이 없고
귀로 듣는 바가 없으니 모든 시비가 끊어졌도다
분별심과 시비심 다 놓아버리니
다만 마음 부처를 보아 스스로 귀의할 뿐이라
부설거사는 신라 사람인데 성(姓)은 진(陣)씨이고 이름은 광세(光世)
자는 의상(宜祥)이며 선덕여왕 때 경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 출가하여 경주 불국사에서 원정(圓淨)스님의 제자가 된 뒤
영희(靈熙),영조(靈照)스님 등과 더불어 지리산,천관산,능가산 등지에서
수년동안 수도했습니다.그뒤 문수도량을 순례하기 위하여 오대산으로
가던중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군 만경들에 있는 구무원의 집에서 하룻밤을
유숙하게 되었는데 그 집에는 18세 된 묘화(妙花)라는 딸이 있었는데
그녀는 나면서 부터 벙어리 였으나 부설거사의 법문을 듣고 말문이
열렸으며 그때부터 부설거사를 사모하여 함께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부설은 승려의 신분인지라 그 청을 거절하니 묘화는 자살을 기도
합니다. 이에 부설은 전생의 인연이라 생각하며 '모든 보살의 자비는 중생을
인연따라 제도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묘화와 부부의 인연을 맺습니다.
그리고 도반인 영희,영조 스님과 헤어지면서 15년 후에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며 자신도 도를 열심히 닦을 테니 두 도반도 같이 열심히
정진하자고 하였습니다. 그 후 부설은 15년 동안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늦게까지 정진하며 수도에 전념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들 등운과 딸 월명을
낳아 길렀습니다. 거사는 비록 몸은 마을에 있었으나 지극한 정진으로
마음이 순화되어 견성(見性)의 경지에 있었으니 늘 즐겁고 편안했습니다.
그 후 여러 곳을 전진하면서 도를 닦은 두 도반은 다시 김제군 만경들을
지나다가 15년 후에 만나자는 부설거사와의 약속이 생각나서 부설을
찾아왔습니다. 두 도반은 부설을 만나자마자 "이 사람아 처자식을 거느리고
속가에 사는 재미가 어떠한가? 이제 도는 멀리 가버렸겠구먼"하고 부설에게
비웃듯이 말했습니다. 두 도반의 말에 부설은 "나는 그저 그렇게 세월을 보냈
다네. 자네들은 그동안 금강산이랑 좋은 수도처를 다니면서 도를 많이 닦으
셨겠지 내가 자네들이 올 줄 알고 저기에 물병 3개를 걸어 두었으니 우리 저
물병으로 서로의 도력을 한번 시험해 보세나."하고 먈했습니다.
두 스님은 조금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부설의 제의에 응했습니다.
먼저 영조 스님이 막대기로 병을치니 병이 깨지면서 물이 쏟아졌습니다.
그 다음에 영희 스님이 막대기로 병을 치니 마찬가지로 병이 깨지면서 물이
쏟아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부설거사가 막대기를 받아 병을 치니 병은 깨어
졌는데 물은 그대로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습니다. 이것을 본 두 스님은
깜짝 놀라면서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우리도 출가하여 수도에만 전념했지만
도력이 그렇지 못한데 재가에 있으면서 도가 이렇게 수승하니 우리는 그저
부끄럽고 놀라울 따름이네." 그러자 부설 거사는 두 도반을 위해 위에서 본
게송을 지었습니다.
인도에는 유마 거사가 있고 중국에는 방 거사가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부설 거사를 가장 대표적인 거사로 꼽고 있습니다.
도는 산속에 있지 않다 /덕운 중에서 <옮겨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