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4월이 되면 사람들은 습관처럼 말한다.
“4월은 참 잔인한 달이야.” 이 문장의 본래 출처는 T. S. 엘리엇의 시 ‘황무지’ 첫 부분이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길러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우네.”
영문학 전통에서 보면 이 구절은 ‘영시의 아버지’라는 중세 시인 제프리 초서가 쓴
‘캔터베리 이야기’의 서시를 전복하는 것으로 보인다.
초서는 4월을 봄비가 자연을 되살리는 회복의 달로 묘사하기 때문이다.
“4월의 달콤한 소나기가/
3월의 가뭄을 뿌리까지 꿰뚫을 때/
꽃을 피우는 힘을 지닌 그 물기에/
모든 잎맥이 적셔질 때.”
학자들에 따르면 초서가 제시한 4월 이미지는 이후 몇 세기에 걸쳐 진부하다고
느낄 정도로 반복된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엘리엇이 바라본 현대의 세계란 그저 폐허,
‘황무지’에 불과했고, 비옥하고 생명력 넘치며 부활의 기운이 생동하는 초서의 4월 이미지는
엘리엇의 시에서 잔인함과 비정함, 죽음과 고통스러운 재생으로 변모한다.
심지어 엘리엇은 바로 뒤에 이렇게 붙여 쓴다.
“겨울은 되레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4월은 어떨까.
대한민국에서 반복되는 4월은 가히 잔인하다고 부를 만하다.
대통령이 파면되기도 하고, 바다에서 아이들을 잃기도 했다.
학살이 자행되기도, 혁명이 일어나기도, 비행기가 격추되기도 했다.
희망을 품는다는 것이 오히려 잔인하게 느껴지는 이 계절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시에는 시로. 나는 여기에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말로 답하고 싶다.
“봄에는 빛이 존재한다/
일 년 중 다른 그 어느 때에도/
찾아볼 수 없는.”
봄은 빛으로 올 것이다.
다만, 우리가 눈을 뜨는 그 순서대로.
<조선일보 오피니언(문지혁의 슬기로운 문학생활)중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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