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겨온 글 모음

명문가들의 음덕(陰德)과 적선(積善)

highlake(孤雲) 2022. 10. 14. 12:10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조선 시대 형조 참판을 지낸 사계(沙溪) 김장생이라는 분이 있었다.
어느 날 제사상에 쓸 돼지고기를 장만하여 부엌에 두었는데 집에서 키우던 개가 돼지고기를
조금 먹었는데 개가 비명을 지르더니 죽어 버렸다. 돼지고기가 상했던 것이다.
그것을 본 김장생은 상한 돼지고기를 판 백정 집에 사람을 보내 그 집 돼지고기를 모두 사 오게 한 뒤,
마을 사람들 몰래 땅에 묻었다.



김장생의 이런 행위로 인하여 백정도 살리고, 마을 사람들의 건강과 생명을 지켰다.
이런 너그러운 마음 씀씀이와 실천으로 그 집안이 명문대가(大家)가 되었고 인재를 많이 배출하였다.
그의 아들 김집(金集)은 조선시대 이조판서, 좌참찬, 판중추부사를 지냈다.



◼부여 임천(林川) 부자 상영부(尙英孚)


상영부는 마을 사람들이 급전이 필요할 때 돈을 빌려 주는 일로 덕(德)을 쌓아 많은
사람들이 우러러 존경했다. 그는 섣달그믐이 되면 금고에서 집을 담보로 한 차용증서를
모두 꺼내어 뒤뜰에서 불태워 하늘로 오르는 연기를 보는 것을 즐거움(樂)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에 그가 쌓은 덕으로 후손이 잘 되리라는 말이 자자 하더니, 명종 때 명재상으로 일컬어지는
상진(尙震)을 손자로 보았다. 상진(尙震)에게 명종이 하사한 땅에 교육 사업으로 지은 상문고등학교가 있다.



◼류성룡의 10대 후손 류도성(柳道性)


류도성은 경상도 도사를 지낸 인물이다. 어느 날 늦은 저녁 하회마을 강 건너 부용대 쪽에서

마을로 건너오던 배가 뒤집혔다. 상갓집에 조문 갔다 오던 수십 명이 물에 빠져 죽게 되었다.



전기가 없던 시절이라 주변은 캄캄하여 앞 보지 못할 지경인데 물에 빠진 사람들은 허우적대면

살려달라고 소리를 쳤다. 사람을 구할 배도 없었다. 마침 강변에는 집을 짓기 위해 잘 말려진
춘양복이 쌓여 있었다. 류도성이 고택을 짓기 위해 3년째 말린 것이었다.



류도성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춘양목을 강물에 던지고 불을 밝히기 위해 화목(火木)으로 사용하였다.
그렇게 해서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했다. 이후 류도성은 춘양목을 다시 어렵게 구해 3년을 말린 뒤 집을
지었는데 그 집이 지금 하회 마을에 있는 북촌댁이다.



◼ 송(宋) 대 재상을 지낸 범중엄(范仲淹)


송대의 유명한 정치가인 범중엄(范仲淹)은 강소성 소주인(蘇州人)으로 어렸을 때 집안이 가난하여
절에 기거하면서 공부를 하였다. 한번은 농사일을 하는데 밭을 갈다가 한통의 금은을 발굴하게 되었지만,
그는 그것을 다시 묻어버렸다. 나중에 출세하여 신분이 귀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절의 스님께 알려
그 금은을 파내어 절을 짓는데 사용하였다.



소주에 남원(南園)이 있는데, 풍수가의 말을 따르면 만약 그곳에 집을 지으면 자손이 반드시
현귀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 당시 범중엄(范仲淹) 마침 승상의 직책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에게 그 땅을 사기를 권하였다. 그러나 그는 한 집안에서 인재가 나오는 것은 한 현에서 인재가
나오는 것보다는 못하다고 하면서 그곳을 사서 집을 짓기 보다는 소주서원을 열었는데 그곳에서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다.



그의 자손들은 삼대뿐만이 아니라 800년이 넘도록 가문이 번창하였습니다. 그리고 청나라 때 섭장원

역시 그의 자손들은 300년이 넘도록 번창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오로지 복의 과보를 대중들과 함께 하였기 때문입니다.



명문가 집안은 음덕을 쌓고 적선을 하여 후손들이 선조의 복력으로 오랜 세월 명문가를 유지하고 있다.
심계천하(心溪天下)라 '덕이 높은 이들은 세상을 걱정한다.'는 뜻으로 명문가는 단순히 자신들의 이익만을
생각하지 않고 넓고 크게 마음을 쓰고 실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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