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특집] 쥐와 불교 / 법보 신문
동서양을 막론하고 쥐는 혐오스러운 동물로 취급된다.
튀어나온 앞니에 긴 꼬리로 생김새가 얄밉다.
진 데 마른 데를 가리지 않고 돌아다니며, 병을 옮기고 저장한 곡식을 약탈해 가기 때문이다.
'쥐' 하면 떠오르는 “찍, 찍” 소리는 간혹 불쾌한 느낌을 줄 때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이미지로 인해 오히려 쥐는 특별한 영물로 추앙받기도 한다.
민간에 전승되는 쥐와 관련된 설화 등에 의하면 쥐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살아남는 근면한 동물,
'미래의 일을 예지'해주는 영물이었다.
약 3600만년 전부터 서식해온 것으로 알려진 쥐는 1800여종에 달한다.
창고나 시궁창 등을 가릴 것 없이 어떤 여건에서도 잘 견디며 살아가는 쥐는
출산 횟수나 한 배에서 낳는 새끼의 수가 엄청난데, 특히 임신기간이 짧다.
뛰어난 번식력은 다산(多産)과 풍요로움을 상징한다.
작은 몸짓을 이용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은 근면과 성실함으로 묘사됐으며 위험을 미리
감지하는 본능은 악운을 막아주는 수호신으로 추앙됐다.
그래서 쥐띠 해는 풍요와 희망과 기회의 해로 알려져 있으며, 쥐띠 해에 태어난 사람은
식복과 함께 좋은 운명을 타고 난다고 말한다.
불교에서도 쥐는 지혜롭고 영특한 동물로 여겨졌다.
특히 어리석은 중생을 깨닫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경전]에서는 '쥐'를 비유한 설화들이
자주 등장한다.
경전에서 쥐와 관련된 이야기로는 [불설비유경]의 '안수정등(岸樹井藤)' 비유가 널리 알려져 있다.
이야기인 즉,
사방에서 일어난 들불과 성난 코끼리에 쫓긴 한 사람이 나무 덩굴을 타고 우물 안으로 피했다.
위기를 모면하는가 싶었더니 우물 안 벽에선 독사 네 마리가 혓바닥을 날름거렸고
바닥에는 독룡이 그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의지할 곳이라곤 덩굴 뿐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나타난 흰 쥐와 검은 쥐가 덩굴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곧 끊어질 위기에 처한 순간, 어디선가 자신의 입으로 떨어지는 달콤한 꿀 다섯방울에
그는 절체절명의 자신의처지를 잊고만다.
이 '비유'는 불교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참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가르침이다.
'한 사람'은 중생들의 인생, '성난 코끼리'는 무상함, '우물'은 나고 죽는 일이 반복되는 험난한 세상,
'덩굴'은 인간의 생명, '독사 네 마리'는 우리 몸을 구성하는 지수화풍의 사대,
'다섯 방울의 꿀'은 재물‧애욕‧음식‧명예‧수명의 오욕, '들불'은 늙고 병듦, '독룡'은 죽음을 각각 상징한다.
흰 쥐와 검은 쥐는 각각 낮과 밤을 상징하는데
인간의 삶을 갉아먹는 시간을 나타낸다.
결국 급박한 상황에 놓여 있으면서도 꿀 몇 방울에 집착해, 무상하고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질책하고 있는 것이다.
쥐는 미륵신앙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국유사’권4 제5 의해편에 따르면 '진표율사'는 '부사의방(不思議房)'에 들어가 수행할 때,
쌀 한 홉을 덜어내 쥐를 길렀다.
미륵신앙을 크게 일으켰던 '진표율사'의 이 같은 기록 탓에 학계는 미륵신앙과 구도(求道)에서
'쥐'가 어떤 역할을 했으리라 짐작하고 있다.
함경도의 세인굿에서 불리던 무가인 '창세가'의 내용은 쥐와 미륵신앙의 또 다른 접점이 된다.
'창세가'를 보면 미륵이 우주의 질서를 정리하고 나서, 쥐에게 물과 불의 근원을 물어 비로소
물과 불을 사용할 줄 알게 됐고 '쥐'는 그 대가로 이 세상의 뒤주를 얻었다.
불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바쳤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조선 후기, '경운 스님'이 중국에서 [묘법연화경]을 들여와 필사본을 쓰기위해 잠시 명상에 잠겼는데,
어디선가 황색쥐가 나타났다.
쥐는 꼬리를 보시할테니 붓을 만들어 필사해 줄 것을 당부했다.
감복한 '경운 스님'은 쥐의 꼬리를 뽑아 붓을 만들었고, 한자에 한번씩 절을 하고 3개월의 공을
들여 완성했다. 이 경전은 현재 '통도사 성보박물관'의 [묘법연화경]으로 알려진다.
출가자의 생애를 다룬 일화에도 스님들과 쥐사이에 각별한 정을 느낄 수 있는 기록들이 꽤많다.
수나라 양주의 '잠사리(岑闍梨)스님'은 쥐와 아주 각별했다.
기억력이 탁월해 외우는 경전이 무려 3000여권에 이르렀던 스님은 무명옷을 입고 걸식으로
식사를 해결했는데, 발우에 남은 음식으로 100여 마리의 쥐를 키웠다.
스님이 방에 들어오면 쥐들이 반가워 몰려들었고, 때로 아픈 쥐가 있으면 스님이 손으로 아픈
곳을 정성껏 쓰다듬어 주었다.
대중들 사이에서 이런 스님의 행동을 두고 말들이 많았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이들과도 친해 함께 장난을 치며 놀았고 때때로 고정관념에 갇혀있는 스님들을 꾸짖었다고 한다.
수나라 진주서쪽 소유산의 '승집(僧集)'이라는 스님도 독특하다.
산중에 살던 승집 스님은 문도들을 모아 수행을 지도했으며, 아무리 험한 일이 있더라도 뜻을
굽히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데 이 스님은 특이하게도 뱀과 쥐를 반려동물로 키웠다.
들은 항상 스님의 좌우에 나타나 따라 다녔으며, 다른 스님들이 쫓아도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일반인들이 스님을 찾아올때면 스스로 숨어버렸다고 기록 돼있다.
이 밖에도 쥐는 많은 설화와 시, 소설 등에 등장해 어리석은 중생들을 깨닫게 하는 방편으로 활용돼 왔다.
- 출처/가장 행복한 공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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