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 / 김시천
그리 모질게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을
바람의 말에 귀 기울이며
물처럼 흐르며 살아도 되는 것을
악다구니 쓰고 소리 지르지 않아도 되는 것을
말 한 마디 참고 물 한 모금 먼저 건네고
잘난 것만 보지 말고 못난 것들도 보듬으면서
거울 속 저 보듯이 서로 불쌍히 여기고
원망하고 미워하지 말고 용서하며 살 걸 그랬어
잠깐인 것을, 세월은 정말 유수 같은 것을
나만 모르고 살았을까
낙락장송은 말고 그저 잡목림 근처에
찔레나 되어 살아도 좋은 것을
근처에 도랑물이나 졸졸거리고 산감 나무 한 그루
철마다 흐드러지면 그 쯤으로 그만인 것을
무어 얼마나 더 부귀영화 누리자고 그랬나 몰라
사랑도 익어야 한다는 것을
더 익은 사랑은 쓰고 아프다는 것을
사랑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젊은 날에는 왜 몰랐나 몰라
나도 이제쯤에는 홍시가 되면 좋겠어.
홍시처럼
내가 내 안에서 무르도록 익을 수 있으면 좋겠어
아프더라도 겨울 감나무 가지 끝에 남아 있다가
마지막 지나는 바람이 전하는 말을 들었으면 좋겠어
<옮겨 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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