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 구함 / 송호필
아, 이십오 년 전이다
햇살 간지러운 봄날이었다
산불처럼 여드름이 번지던 우리는 열일곱 살이었다
짝사랑만 있고 애인이 없었다
금세라도 까만 교복을 찢으면 뜨거운 살색
뙤약볕에 자갈밭을 구를 수도 있었던 우리
이팔청춘은 c팔, 애인이 없었다
그때 우리, 너나없이 공책을 찢어
싸인펜으로 갈겨썼던 뜨거운 글씨
지겨운 수학시간 꾸벅꾸벅 졸던 친구
그 실한 등짝에 몰래 붙였던 화약 같은 말
애인구함
친구는 펄쩍 화를 내고 끝내 멱살을 쥐었지만
너나 나나 애인은 꿀처럼 달콤하고
꽃처럼 눈부시다고 생각했다
끝내 주먹다짐에 아까운 코피도 흘렸다만
미치도록 연애하고 싶었다 우리는
밤 열두 시 무서운 서낭당 고개를 넘어
공동묘지 허물어진 무덤 위에 사삐연필도 꽂을 수 있었다
무뚝뚝한 아버지 저녁밥 먹을 때 미친 척
애인구함 종이가 붙어있는 등짝을 내밀 수도 있었다
꽃처럼 예쁜 너
네가 내 애인만 돼준다면!
<옮겨 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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