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글

나는 왜 사는가?

highlake(孤雲) 2025. 10. 12. 11:44

어느 날, 물라 나스루딘이 나에게 말했다.

“나는 더 많은 땅을 갖고 싶습니다.”

내가 그에게 물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대는 이미 많은 땅을 갖고 있다.”

그가 말했다.

“땅이 많으면 더 많은 소를 키울 수 있으니까요.”

내가 물었다.

“그것들로 무얼 하려는가?”

그가 말했다.

“소를 팔아서 돈을 벌려고 합니다.”

내가 말했다.

“그 다음에는? 그 돈으로 무얼 하려는가?”

그가 말했다.

“더 많은 땅을 사려고요.”

내가 물었다.

“무얼 위해서지?”

그가 말했다.

“더 많은 소를 키우려고요.”

 

이런 식으로 그대는 벗어날 수 없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다.

그대는 살려고 먹고, 먹으려고 산다. 이것이 가장 낮은 수준의 가능성이다.

가장 낮은 형태의 생명체는 아메바이다. 아메바는 그저 먹기만 한다. 그것이 전부이다.

아메바에게는 성적인 삶이 없다. 아메바는 그저 닥치는 대로 먹기만 한다.

그래서 아메바는 가장 낮은 수준의 인간을 상징한다.

아메바에게는 다른 내장기관이 없으며, 오직 입만 있다.

아메바의 몸 전체가 입으로만 기능한다.

자기 근처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소화를 시킨다.

가까이 오는 것이면, 무조건 먹어치운다. 아메바는 온몸으로 그것을 흡수한다.

몸 전체가 입이자 소화기관이다.

아메바는 점점 더 커지고, 어느 시점에는 더 이상 커질 수가 없어서 감당하지 못한다.

그때 아메바의 몸은 둘로 갈라진다.

그러면 두 개의 아메바가 생긴다. 그리고 다시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

아메바는 먹고 생존할 뿐이다. 그리고 더 많이 먹기 위해서 생존한다.

 

이렇듯 가장 낮은 수준의 단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깨어나라. 삶은 그대에게 줄 더 중요한 뭔가를 갖고 있다.

그것은 단지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뭔가를 위한 생존이다.

생존은 필요하지만,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그것은 수단일 뿐이다.

오쇼의 <기적의 차크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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