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스크랩

전유성의 재치와 비견되는 각국 명사들의 묘비명

highlake(孤雲) 2025. 10. 4. 12:50

 

엊그제 타계한(pass away) 개그계의 대부 전유성은 마지막 순간까지 ‘웃음’을 놓지 않았다.

“묘비명(epitaph)으로 어떤 문구를 남기고 싶으냐”는 물음에 “웃지 마, 너도 곧 와”라고

답해 죽음조차 코미디로 승화시켰다.

이 의미심장하고 재치 넘치는 한마디(meaningful and witty remark)는 그의 삶의 철학과

유머를 담은 ‘마지막 대사(final line)’였다.

묘비명의 ‘명’은 한자로 ‘이름 명(名)’이 아니라 ‘새길 명(銘)’이다.

묘비(墓碑·tombstone)에 새겨 넣는(engrave) 고인의 한평생 외마디 증언이자 작별 인사다.

전유성이 이승에 작별을 고한(bid farewell to this world) 개그 멘트를 계기로 세계 곳곳의

유머와 삶의 철학이 담긴 묘비명을 찾아봤다.

 

전유성의 묘비명과 가장 비슷한 것은 한 익명의 이탈리아인 묘소에 남아 있다.

“다음은 너야(You are the next).”

영국 코미디언 스파이크 밀리건은 “내가 아프다고 말했잖아(I told you I was ill)”라고

새겼다. 미국의 성우 멜 블랭크 묘비에는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That’s all, folks)”

이라고 쓰여 있고, 광고 시간마다 “곧 돌아오겠습니다”라고 했던 토크쇼 진행자 머브

그리핀은 “이 메시지 이후에는 돌아오지 않겠습니다(I will not be right back after this

message)”라는 묘비명을 남겼다.

 

“나는 세상과 연인들 같은 다툼을 벌였다(I had a lover’s quarrel with the world).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자신의 시 ‘오늘을 위한 교훈(A Lesson for Today)’에서

이 구절을 묘비명으로 삼았고,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는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The best is yet to come)”는 자신의 히트곡 가사로 저세상의 더 나은 여정

(better journey of the afterlife)으로 떠남을 알렸다.

아일랜드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어영부영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라고 썼고,

미국 작가 도로시 파커는 “내 먼지를 양해해 주세요(Excuse my dust)”라고 묘비에

새겼다. 파커는 흙으로 돌아가는 자신의 시신이 먼지가 돼 이승에 남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게 됐노라 미안해하며 이해를 구한 것이다.

일반인 묘비명 중에도 나름 뜻 심오해서 심금 울리는 글귀가 많다. “여기 무신론자

한 사람 잠들다. 옷은 잘 차려입었는데 갈 곳이 없네(Here lies an atheist. All dressed

up and no place to go).” “나는 여기에 없다(I am not here).”

“나는 피라미드에 묻히길 원했는데(I was hoping for a pyramid).

“이런, 여기 아래는 너무 깜깜하다(Damn, it’s dark down here).”

“일어나서 응대하지 못함을 용서 바랍니다(Pardon me for not rising)

"사랑한 만큼 사랑 받았다(Loved as much as I loved).”

“떠나버렸네. 갚을 길 없는 많은 신세만 지고(Gone away. Owing more than he

could pay).” “나이 102세. 좋은 사람들은 일찍 죽는다(Age 102. The good die young).”

<조선일보 윤희영의 News English)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