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의 움푹 팬 곳에 물 한 잔을 엎지르면,
거기서는 씨앗 한 톨이 배 한 척이 된다.
-앵거스 그레이엄의 ‘장자’ 중에서

살다 보면 힘에 부칠 때가 있다.
내가 충분히 깊지 못해서 배를 물에 띄우지 못하는 것이다.
그럴 때 배는 거의 좌초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물을 한두 잔씩 천천히 붓다 보면
물은 조금씩 깊어진다.
내가 점점 깊어진다.
가라앉은 닻처럼 꿈쩍도 안 하던 배가 두둥실 떠오르고,
갑자기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그것도 원래 목적지가 아닌,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땅으로.
그게 바로 삶의 묘미다.
힘에 부친다고 그냥 포기해 버리지 않고 발악하듯 애써 보면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것.
역설적이게도 몸 여기저기 난 상처를 통해 결국 내가 깊어진다.
그 상처에서 씨앗 한 톨이 미지의 돛 같은 싹을 틔운다.
<조선일보 오피니언(황유원의 어쩌다 마주친 문장)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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