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류시화님의 책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중에옮겨
온 글입니다.
어느 명상 잡지에서 뉴욕 택시 운전사의 경험담을 읽은 적이 있다.
밤중에 전화를 받고 승객을 태우려 갔는데 어두운 슬럼가에다 인적조차 없었다.
그런 상황이면 다들 느냥 차를 돌리지만 그 운전사는 왠지 알 수 없는 느낌이
들어 경적을 울린 후 차에서 내려 건물로 다가갔다.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잠깐만 기다려 달라는 연약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참 뒤 문이 열리고 여든 살이 넘어 보이는 노부인이 작은 짐 가방을 들고 나왔다.
고전 영화에서처럼 원피스에 베일이 드리워진 모자를 쓰고 있었다.
운전사의 에스코트를 받아 택시에 올라탄 그녀는 찾아갈 주소를 건네며 시내를
통과해 가지고 부탁했다. 주소지까지는 20분밖에 안 되는 거리인데 시내를 거쳐
가면 한 시가이 넘게 걸린다고 운전사가 설명하자, 그녀는 서두를 이유가 없다고
말하며 자신은 지금 노인 요양원으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했다.
두시간 동안 그들은 시내 곳곳을 돌아 다녔다. 그녀는 자신이 처녀 시절에
엘리베이트 걸로 일하던 빌딩 앞에 차를 세워달라고 부탁하고는 창문 밖으로
한참 동안 그 건물을 바라보았다. 그 다음에 간 곳은 그녀가 결혼해서 갓 신혼
살림을 차린 주택가였다.
지금은 가구 전시장으로 바뀐, 소녀 시절 춤울 추곤 했던 무도회장 앞에서도 멈췄다.
그녀는 건물앞이나 네거리에 차를 세우게 하고는 말없이 어두운 차 안에
앉아 밖을 응시하곤 했다.
마침내 그녀는 말했다.
"이제 가야겠어요."
작고 허름한 요양원 앞에 직원들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택시에서 내린 그녀가 지갑을 꺼내 요금을 묻자 택시 운전사는 돈은 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그녀를 부축해 주었다.
그녀는 그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
"이 늙은이가 생의 마지막 기쁜 순간들을 가질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요"
그녀는 요양원 안으로 들어갔고 소리를 내며 문이 닫혔다.
그녀 인생의 마지막 문이 닫히는 소리였다.
불친절한 택시를 탔거나 참을성 없는 운전사를 만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운전사가 먼 길을 돌아가기를 거부했거나 그녀를 내버려 둔 채 어두운 슬럼가를
떠났다면?
우리가 하는 행동과 말, 우리가 내미는 손길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될 수도 있다.
그 영혼은 그 마지막 느낌을 마음에 간직한 채 이 세상을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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