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돌아가신 부모님이 보고 싶으면 사진을 꺼내 본다.
사진은 종이에 불과하다. 그 종이에 생전 부모의 얼굴이 있다 하더라도
살아있는 부모가 아니므로 의미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사진을 보는 순간은 부모와 만나는 시간이다.
그 만남은 마음에서의 만남이다. 부모와의 만남은 언제나 가능하다.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부모는 부모의 몸이 아니다.
‘장자(莊子)’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공자가 일찍이 초나라에
사신으로 갈 때 목격한 일이다. 돼지새끼들이 죽어가는 어미돼지의 젖을
빨고 있었는데, 조금 있다가 그 새끼들이 순식간에 모두 그 어미를 버리고
달아났다. 그 까닭은 그 어미가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이를 본 공자는 말했다.
“돼지새끼들이 그 어미를 사랑한 것은 그 몸을 사랑한 것이 아니다.
그 몸을 부리는 것 즉 본심(本心)을 사랑한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부모를 그리워할 때는 그 몸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다. 몸을 그리워한다면 돌아가신 부모의 시신을 방부처리해서
계속 보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부모의 몸을 그리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운 것은 부모의 마음이다.
그런데 부모도 사람이기 때문에 부모에게도 두 마음이 있다.
본심(本心)과 욕심(欲心)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참으로 그리운 것은 부모의 본심이다. 본심은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한마음이다. 한마음에서는 남과 나를 구별하지 않는다.
그 마음은 욕심에 가려져 잘 나타나지 않지만, 자녀를 대하는 부모에게서
가장 잘 나타난다.
부모의 본심은 우주에 가득한 ‘하늘마음’이다.
우리가 배고프다는 걸 느끼는 것은 하늘마음이 나한테 밥 먹어란 소리이다.
이 소리가 부모님이 계시면 ‘애야 밥 먹어라.’하고 부모 목소리를 통해
전해진다. 이 목소리는 부모님 말 속에 들어있는 하늘마음 소리이다.
이 하늘마음은 부모가 계실 때도 있었고 부모가 없어도 있는 하늘마음이다.
이 본심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자녀를 대하는 부모의 마음은, 공자가 말하는 인(仁)이고, 석가모니가 말하는
자비(慈悲)이며, 예수가 말하는 사랑이다. 사람들이 부모를 좋아하는 것은
그 마음 때문이다. 그 마음은 천지에 가득한 하늘의 마음이고, 우주에 가득한
우주의 마음이다. 그 마음은 부모의 몸이 돌아가신 뒤에도 우주에 가득하다.
그 마음은 변치 않는다. 그러므로 그 마음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만날 수 있다.
본심인 하늘마음에게서 받는 사랑과 부모에게서 받던 사랑은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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