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스크랩

지나친 내일 걱정이 오늘을 힘들게 한다

highlake(孤雲) 2022. 8. 23. 12:41

건강 염려가 증가했음을 임상 현장에서 느낀다.

예를 들면 건망증으로 인한 치매 걱정이다.

몇 년 전에 비해 기억력이 좋아진 경우가 있는지 질문하면 나이를 불문하고

손 드는 이가 없는 상황이다.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건망증인데 조기 치매가

아닌지 걱정되어서 찾아오는 30대 직장인도 있다.

건강 염려가 심해질 경우 질병불안장애(illness anxiety disorder)에

이를 수 있다. 대부분의 생각이 하루 종일 건강 염려에만 빠져 있는 경우도 있다.

옆에서 보기에는 왜 저러나 싶지만, 건강 염려는 꾀병이 아니다.

그리고 마음만 불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몸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마음이야 불편하면 그만인데 실제 몸이 상해서 문제다’라며 불안이 몸에

야기하는 부정적 영향을 강조해서 이야기할 때가 있다.

심리적 요인이 몸에 영향을 주는 예를 하나 들어 보면 백의 증후군(white coat

syndrome)이다. 진료실 등 의료 환경에서는 혈압 수치가 높지만 가정 등

병원을 나서면 혈압이 정상인 경우를 이야기한다.

병원 환경에서 증가한 불안이 혈압을 증가시킨 주요 원인이다.

병원에서 고혈압을 보이는 경우 15~30%에 이르니 적지 않은 수다.

 

백의 증후군으로 인한 고혈압은 과잉 진료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백의 증후군 자체가 심혈관 질환과 연관성이 있다는 연구도 존재한다.

과도한 불안이 심장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건강 염려가 높은 사람에게서 심혈관 질환 발생 위험도가 70%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도 존재한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건강 염려는 꾀병이 아니다.

실제 심장이 망가질 수 있다.

 

건강 염려가 심한 이들에게 삶의 목표를 물으면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란

답이 많다. 누가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지 않겠는가.

그런데 아이러니는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에 너무 집착하면 미래의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무엇보다 과도한 미래 불안은 오늘에 대한

몰입을 방해한다. 최악의 시나리오로 갈 수도 있는 것이다.

현재는 행복하지 않고 미래는 불안하고 건강도 잃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건강 염려가 심한 경우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역설적 답변을

할 때가 있다. 나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건강할 수 있겠지만 노화를 역행하고

젊음을 유지하는 것은 팩트첵크를 해 보면 불가능한 일이다.

불가능한 목표를 노력해서 이룰 수 있는 것으로 설정해 놓으면 삶이 피곤해지고

부작용이 일어나게 된다.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오늘을 즐기며 살라’고 이야기를 드린다.

지나친 건강 염려는 오늘을 놓치게 하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데 오히려

방해꾼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윤대현의 마음속 세상풍경) 에서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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