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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어머니의 사는 법/ 박 경리

highlake(孤雲) 2018. 9. 21. 10:36

 

 

어머니의 사는 법/ 박 경리 내 것 아니면 길가 개똥같이 보인다. 단단한 땅에 물 고이고 오늘 먹으면 내일 걱정을 해야 한다. 항상 하던 어머니의 말이다. 그 말 그대로 살다 간 어머니..... 남의 것 탐내거나 부러워한 적 없었고 쉬어서 못 먹는 밥도 씻어서 끓여 먹고 가을에는 일 년치의 땔감 양식을 장만하지 않고는 잠이 안 오는 성미. 하여 태평양전쟁 말기, 육이오전쟁 때도 우리는 죽 아닌 밥을 먹었다. 그리고 돈은 어머니의 신앙이었다. 중략............. 필요 없는 것은 사지 않았으며 다만 옹기전 앞을 지날 때는 예쁘고 야문 단지를 골라 들고 한참을 살피는데 유혹을 물리치지 못한 듯 값을 지불하는 것이었다. 장독대 항아리는 윤이 나서 반짝거렸다. 방 안의 이불장에도 비단 이불이 그득했다 어머니는 말하기를 여자란 음식은 아무거나 먹어도 잠자리는 가려서 자야 한다. 그래서 이불 호사가 그리 대단했을까. 깊은 겨울에도 우리 모녀는 온 집 둘레에 장작을 쌓아 놓고도 불 안 땐 냉방에서 잠을 잤다. 이불 요를 두 채씩이나 깔고 덮고 잤다. 사막 같은 집 안이었다. 장독대와, 장롱 속의 비단옷, 이불장의 비단 이불 그것 말고는 색채도 모양도 없는 살풍경이었다. 부엌에는 막사발 몇 개 겨울에는 놋그릇이었지만. 소반 물독 가마솥 두 개 .. 그 외에 기억에 남는 세간이 없다. 길이 잘 난 가마솥은 메주콩을 삶는다든지 간장을 대린다든지 빨래를 삶고 손님이 온다거나...그럴 때만 사용했고 대개는 작은 법랑 남비에 장작을 성냥개비처럼 칼로 잘게 쪼개어 밥을 지었다. 평소에는 밑반찬 한두 가지 된장국 김치가 고작인 밥상. 더 이상 절약할래야 할 수 없는 생활이었다. 어머니도 돈을 아끼지 않을 때가 있었다. 절에 시주하는 일... 길 가다가 다리 놓는 공사라도 마주치게 되면 상당한 금액을 희사했다. 많은 사람이 지나다닐 다리인지라 시주는 큰 공덕이 되는 것은 물론, 죽어서 삼도천 건널 때도 도움을 받는다고 믿는 까닭이다. 어머니는 남과 나누어 먹는데도 인색한 편은 아니었다. 손이 작으면 못쓴다 그러면서 이웃 간에 고사떡도 듬뿍 담아 돌렸고 여름에는 우무콩국을 만들어 이웃과 나누어 먹었다. 언제였던가 박재삼 시인이 세상 떠나기 전에 왕십린가 청량리, 기억이 확실치 않으나 아프다는 소식 듣고 찾아간 일이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박 시인 댁네가 결혼해서 처음 서울 왔을 때 할머니가 ...된장 고추장 챙겨 주더라는 말을 하며 이제는 세상에 없는 어머니를 회상하는 것이었다. 내게는 희미한 기억이었지만... 그러나 어머니의 그 같은 자비의 행위가 내게는 정감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불교적 계율을 지켰다 해야 할지 심하게는 형식적이었다 할 수도 있고 감동이 없는 성격 탓이었을까? 다정하게 말할 줄 몰라 그랬는지 어머니는 받아야 할 것은 반드시 받아 냈고 줄 것은 또 어김없이 돌려주었다. 어떻게 우리가 살아남았는지 기적 같기도 하다. 어머니의 깐깐한 그 성미 탓으로 우리 식구가 사지에서 구원된 일... 아득한 옛날인데 어제 일 같기도 하고 세월이 너무나 많이 흘러 지금은 그들 대부분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지만 생각이 나곤 한다. 각기 다르게, 그러나 모두 한길을 가는 목마른 삶의 모습을 생각하는 밤이 그 얼마인가. 나는 어머니가 목청을 돋우어 남과 다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삐거덕거리기 마련인 ... 기봉이네하고도 다투는 것을 못 보았다. 사람들이 남의 험담을 하면 세상에 숭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했고 말소드레기 일으키는 것들 상종 안한다는 말도 했다. 말소드레기란? 말을 옮겨서 분란을 일으킨다는 뜻인데 어머니는 남의 일에 깊이 관여하지 않았고 호기심도 없었다. 밥 먹고 할 일 없는 것들, 내 살기도 바쁜데 남의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그럴 새가 어디 있느냐. 여하튼 어머니는 매사에 소극적이며 남에게나 자신에게도 과소평가를 원칙으로 하여 남을 추켜세운다거나 자기 자랑하는 일이 없었다. 꿈을 꾸는 사람에게 일이란 돼 봐야 안다는 말로 번번이 찬물을 끼얹었으며. 나 역시....어머니의 방식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남과 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아이로 아니, 남보다 뒤처지는 아이로 유년기의 나의 감성은 벌판에 홀로 서 있는 새와도 같았다 중략..............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죽음의 길에 유일한 호사는... 수도 없이 많은 부적이었다. 시신을 덮고도 남는 큰 부적을 위시하여 크고 작은 부적이 수의와 함께 쏟아졌다. 그중에는 동그랗게 찍어 낸 종이돈 삼도천을 건널 때 쓰려고 했는가....수월찮이 많았다. 쓸쓸한 장례였다. 어머니를 화장하고 돌아온 날, 그 밤 딸과 손주는 원주 시가로 내려가고 아무도 없이 혼자 남은 밤 외등을 켜놓고 나는 뜰에서 돌을 깔았다. 경국사 뒷산이 씻꺼멓게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따금 어머니 방 쪽에서 소독 냄새가 풍겨왔다. 그 냄새는 꿈같은 하루 어머니의 죽음을 일깨워 주었다. - 박경리 유고시집 /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중에서-

출처 : 가장 행복한 공부
글쓴이 : 참마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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