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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고(老人考) 』
/ 최상호 시인
노인이 되어봐야
노인세계를 확연히 볼 수 있다고나 할까.
노인들의 삶도 가지가지이다.
노선(老仙)이 있는가하면, 노학(老鶴)이 있고
노동(老童)이 있는가하면, 노옹(老翁)이 있고
노광(老狂)이 있는가하면, 노고(老孤)도 있고
노궁(老窮)이 있는가하면, 노추(老醜)도 있다.
노선(老仙)
노선(老仙)은 늙어 가면서 신선처럼 사는 사람이다.
이들은 사랑도 미움도 놓아 버렸으며,
성냄도 탐욕도 벗어 던지고 마침내
선도 악도 털어 버렸다.
삶에 아무런 걸림이 없으니
건너야할 피안도 없고 올라야할 천당도 없고
빠져버릴 지옥도 없이
그저 무심히 자연 따라 흘러갈 뿐이다.
가히 신선의 경지가 아닌가.
노학(老鶴)
늙어서 학처럼사는것이다.
이들은 심신이 건강하고 여유가 있어
나라 안팎을 수시로 돌아 다니며
산천경계를 유람한다.
그러면서도 검소하며 천박하질 않다.
많은 벗들과 어울려 노닐며 베풀 줄 안다.
그래서 친구들로 부터 아낌을 받는다.
틈나는 대로 갈고 닦아 학술논문이며
문예작품들을 펴 내기도한다.
노동(老童)
늙어서 동심으로 돌아가
청소년처럼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학의 평생 교육원이나
학원, 아니면 서원이나 노인대학에
적을 걸어두고 못 다한 공부를 한다.
시경 주역등 한문이며 서예며 정치 경제
상식이며 컴퓨터를 열심히 배운다.
수시로 여성 학우들과 어울려 여행도 하고
노래며 춤도 추고 즐거운 여생을 보낸다.
정년퇴임을 하고 수시로 봉사활동에도 참여하는
언제나 청춘인 삶을 누린다.
노옹(老翁)
노옹(老翁)은 문자 그대로 늙은이로 사는 사람을 말한다.
집에서 손주나 봐주고
텅 빈 집이나 지켜주다가 어쩌다
동네 노인정이나 경로당에 나가서
또래들과 화투나 치고
장기, 바둑을 두기도 한다.
형편만 되면 따로 나와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늘 머리속에 맴돌면서도
객지살이에 힘든 아들딸에게
용돈조차 올려달라는 말을 아끼는 삶이다.
노광(老狂)
미친사람처럼 사는 노인이다.
함량 미달에 능력은 부족하고
주변에 존경도 못 받는 처지에
감투 욕심은 많아서 온갖 장을 도맡아 한다.
돈이 생기는 곳이라면 체면 불구하고
파리처럼 달라 붙는다.
권력의 끄나풀 이라도 잡아 보려고
늙은 몸을 이끌고 끊임없이 기웃거리지만 실속이 없다.
자기가 한창인 줄로만 알고
현직 때처럼 불리기를 바란다.
노고(老孤)
노고(老孤)는 늙어가면서
배우자를 잃고 외로운 삶을 보내는 사람을 말한다.
주변에는 홀로되신 할머니들이 훨씬 많지만
할아버지들 삶이 상대적으로 더 외로운 법이다.
우스갯소리로 이십대의 아내는 애완동물같이 마냥 귀여웠고,
삼십대의 아내는 기호식품 같았으며
사십대의 아내는 없어서는 안 될 가재도구였으며,
오십대가 되면 한 집안의 가보였다가
육십대의 아내는 지방 문화재급,
칠십대가 되면 아내는 국보의 위치에 올라 존중을 받는 것이다.
그런 귀하고도 귀한 보물을 잃었으니
외롭고 쓸쓸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남자와 여자가 특별나게 다를 바는 없겠다.
노궁(老窮)
노궁(老窮)은 늙어서 수중에 돈 한 푼 없는 사람을 말한다.
입맛 깔깔하게 아침 한술 뜨고 나면
집을 나와야 하는데 갈 곳이라면 공원 광장뿐이고,
점심은 무료 급식소에서 해결한 뒤에
석양이 되면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들어간다.
며느리 눈치 슬슬 보며 겨우 밥술 좀 떠 넣고
식구들 텔레비전 보는 데 방해될까봐
눈치껏 빈방에 들어가서 자는 척 해야 한다.
들릴락 말락 ‘어서 죽어야지’하면서도
모진 목숨 스스로 끊지를 못해서
죽지 못해 사는 삶이다.
노추(老醜)
노추(老醜)는 늙어서 추한 모습으로 사는 사람을 말한다.
어쩌다 불치의 병을 얻어
다른 사람 도움 없이는 한시도 살 수없는
못 죽어 생존하는 가련한 노인이어서
평생을 바쳐 기른 자식에게서조차
돌봄을 받지 못하고 시설이나 요양병동에 누워서 산다.
출처: 영주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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