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의 맑은 새벽에 나무 그늘 사이에서 산보할 때에
나의 꿈은 적은 별이 되야서 당신의 머리 위에 지키고 있것습니다
당신이 여름날에 더위를 못 이기어 낮잠을 자거든
나의 꿈은 맑은 바람이 되야서 당신의 주위(周圍)에 떠돌것습니다
당신이 고요한 가을밤에 그윽히 앉어서 글을 볼 때에
나의 꿈은 귀따람이가 되어서 책상 밑에서 ‘귀똘귀똘’ 울것습니다
-한용운(1879-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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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은 스님이면서 시인이었고, 독립운동가였다.
3·1 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참여해 옥고를 치렀다.
1944년 심우장에서 입적할 때까지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이 시는 1925년 백담사에서 탈고한 후 이듬해 회동서관에서 펴낸
시집 ‘님의 침묵’에 실려 있다.
이 시에서의 ‘당신’은 화자인 ‘나’가 매순간 그리워하는 대상이다.
사랑하는 사람으로 이해해도 좋고, 조국, 부처, 모든 생명 존재로 읽어도 좋을 것이다.
‘나’는 ‘당신’의 주위에, 곁에, 둘레에 늘 함께 있겠다고 말한다.
당신이 미명의 새벽길을 갈 때에는 별이 되어 당신을 외호(外護)하고,
무더운 여름 낮에는 한 줄기 청량한 바람이 되어 당신에게 불어가고,
당신이 가을밤에 글을 읽고 쓸 적에는 그 사색과 고뇌의 책상 아래에서 울음을 우는
귀뚜라미가 되겠노라고 말한다.
한용운은 엄혹했던 식민지 현실에서도 애타게 사랑을 호소하는 언어를 통해
자유와 평화의 회복, 그리고 광복의 빛과 꿈을 노래했다.
<조선일보 오피니언(문태준의 가슴 따뜻해지는 詩)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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