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중략)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 1941. 11. 5.
어두운 세계에서 영혼 통해 저항했던 윤동주
윤동주를 저항 시인이라고 하지만 그의 시만 놓고 보면 고민하고 부끄러워하는
내성적 성향이 두드러져서 저항시다운 강인한 느낌은 별로 얻을 수 없다.
작품의 문맥만 놓고 보면 ‘간’과 ‘쉽게 씌어진 시’ 정도를 저항시로 읽을 수 있다.
윤동주를 저항 시인으로 일컫게 된 결정적 계기는 그의 옥사에 있다.
옥사에 이른 세부적 사항이 문서로 남아 있어서 그가 지녔던 항일 민족 의식의
단면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송몽규, 윤동주와 관련하여 일본의 특별 경찰 문건에 ‘경도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 사건’으로 기록이 남아 있고,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1943년 7월 검찰에
송치되고 1944년 2월에 기소된 후 재판받은 판결문에 두 사람의 활동 상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여러 가지 증거 자료에 의해 두 사람에게 2년의 실형이 선고된 것이니,
윤동주가 항일 민족의식을 지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재론할 여지가 없다.
문제는 그의 시에 이러한 의식이 얼마나 표현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그의 시는 자유가 억압된 상황에서 부조리한 현실에 괴로워하며,
어두운 세계에서도 순수한 영혼을 지키려고 애쓴 지식인의 고뇌를 보여준다.
정신을 행동으로 표출하지 못하는 자신의 나약함을 부끄러워하며 그 심정을
정직하게 시로 표현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행동으로 저항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뇌하는 영혼으로 시대에
저항한 것이다.
따라서 그의 시는 행동적 저항시가 아니라 내면적 저항시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좋다.
<조선일보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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