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80주기 / 어둠 넘어 별을 노래하다] [9] 위로
육체적인 것인지 마음의 병인지
알 수 없는 아픔에 시달리는 우리
모두 가슴에 '금잔화 한 포기' 꽂자
작은 희망 한 줌, 결국 위로가 된다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제목... 원래는 ‘병원’으로 하려고 했다
윤동주는 1934년 12월 중학교 3학년 때 세 편의 작품을 노트에 쓴 후 쉬지 않고 작품을 써서
기록했다. 용정의 광명학원 중학부를 다니던 1936년과 1937년에 가장 많은 작품을 써서
이 시기의 작품 수가 70편 가까이 된다.
1938년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면서 작품 편수가 줄어드는데, 창작에 신중했기 때문일
것이다. 1938년 가을까지 작품을 쓰고 1년 가까운 휴식기를 거쳐 이듬해 9월에 ‘자화상’ 등
몇 편의 작품을 썼다.
그 이후 다시 긴 침묵의 시기를 보내고 1940년 12월에 ‘위로’와 ‘병원’을 썼다.
두 번째 공백기는 1년 3개월이 된다.
그 이후에는 다시 시작의 리듬을 되찾아 1941년에는 16편의 작품을 썼다.
이를 통해 연희전문 2학년과 3학년 때 윤동주가 창작의 갈등을 겪으며 진통의 시간을
보냈음을 알 수 있다.
진통의 시간을 넘어서면서 완성한 작품이 ‘위로’와 ‘병원’인데, 자신이 계획한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는 ‘병원’만 수록하고 ‘위로’는 수록하지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윤동주가 자신의 시집 제목을 ‘병원’으로 하려고 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후배 정병욱에게 “지금 세상은 온통 환자투성이인데 병원은 앓는 사람을 고치는
곳이니 내 시가 앓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겸손하게 말했다고 한다.
이 말에는 세상에 대한 기독교적 헌신의 자세가 담겨 있다.
자신의 시를 도구로 삼아 병든 사람들이 위안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효용적 태도를 밝힌
것이다. 두 번째 공백기를 지나며 쓴 ‘병원’에 윤동주의 문학관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일보 오피니언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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