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번 국도를 따라 대게의 고장 경북 영덕을 지나다 급히 멈춰 섰다. 장사해수욕장 한쪽에 정박한 거대한 선박 한 척을 발견하고서다. 함정 몸체에 적힌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이라는 이름과 ‘작전명 174호... 잊혀진 영웅들!’이라는 대형 문구가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장사상륙작전이 뭐죠?” 근처에서 여유를 즐기는 캠핑족들에게 물었으나 묵묵부답이다. 함정(문산호) 바로 옆 추모공원 안에 들어선 16~19세 어린 학도의용군 772명의 추모비와 명패, 전승기념관을 둘러보고 나니 곧바로 죄책감이 몰려왔다. 이들은 1950년 6·25전쟁 발발 후 전세가 악화되자 유엔군이 인천 상륙작전을 감행하면서, 적군을 교란할 목적으로 동해안에서 펼친 양동작전의 희생자들이었던 것이다. “몰라서 죄송하다”는 한탄이 입 밖으로 절로 새어 나왔다.
전쟁 발발 약 3개월 후인 9월 14일, 이들은 부산을 떠나 이곳에 상륙해 북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200고지 점령, 적군의 후방 주요 보급로 차단 등의 역할을 수행했던 격전 속에서 병사들은 전사하고 함정은 좌초됐던 것. 그 희생 덕분에 9월 15일 거행된 인천상륙작전은 성공했고 9월 28일 서울 수복에 이어 10월 1일에는 국군이 38선(線)을 돌파하게 된 것이다.
대구·밀양 지역에서 자원입대한 학도병들은 당초 작전 수행 3일 후 부산으로 철수할 계획이었지만 육군본부의 철수 명령이나 무기·식량 추가 지원도 없어 모두 탈진한 상태였다고 한다. 이 지역 탈환을 위해 북한군이 대규모 병력을 투입해 반격하면서 희생자가 속출했다. 문산호는 미국에서 2366t급으로 건조돼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을 통해 한국군에 동원된 군함이다.
국내 유일의 바다 위 ‘호국전시관’은 2020년에야 건립됐다. 전쟁 당시 공식문서가 없는 군사기밀이라 역사에 남지 못했기 때문이다. 침몰 후 바닷속에 묻혔던 문산호를 1997년 발견, 그 모습을 본떠 324억원을 들여 5층 규모로 지어 일반에 공개했고 미흡한 점을 보충해 작년 7월 재개관했다. 군함 주위 추모공원 안 학도병들의 교전 모습을 담은 동상들과 그 이름 명판 등을 보면서 잔혹한 총구 앞에서 10대의 어린 자식들을 떠나보낸 부모들의 피눈물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졌다.
기념관 안에는 전쟁 당시 연합군 총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이 이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보낸 편지가 전시돼 눈길을 끈다. 1960년 10월 보낸 맥아더의 친필 서명 편지에는 “인천상륙작전을 돕기 위해 전사한 영웅들을 추모한다. 그들의 헌신은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쓰여 있다. 전쟁 당시 군사전문가들조차 ‘성공확률 5000분의 1’이라며 만류했던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도운 장사상륙작전이 결국 전세를 역전시키는 교두보가 됐음을 시인한 것.
6·25전쟁 당시의 국군 전사자는 모두 13만7000여명이나 된다. 76년이 지난 지금, 전몰자들의 소중한 생명을 대가로 얻은 평화와 번영을 누리는 후손들은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그들을 추모해 왔는가, 또 그들의 희생을 유산으로 받은 개개인은 나라를 위해 어떤 기여를 했나 돌아보게 된다. 그들 외에도 조국의 해방과 민족 항쟁을 위해 헌신한 호국영령들이 떠오른다. 현충일 조기(弔旗)조차 거는 집들이 드문 마당에 형식적으로 치러지는 국가 추모 행사로 그 과중한 부채를 쉽게 탕감하려 들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6월만큼은 시련의 역사를 되새기며 후손들이 어떤 자세를 이어갈지 각 가정에서 진지하게 토의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또 순국선열들을 모신 곳곳의 국립묘지나 기념관 등을 찾는 추모 나들이도 병행하면 어떨까. 감사하며 좀 더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삶은 개개인에게 자부심을 안겨준다. 거룩한 희생을 기억하는 후손들은 향후 어떤 위기에도 강건한 정신으로 거듭나는 민족적 정체성과 자긍심을 지니게 되리라. 전쟁 후의 무참한 폐허와 가난 속에서 오늘의 번영을 일군 이 땅의 모든 역군들과 부모님 세대께 깊은 경의를 표한다.
[아무튼, 주말]
[고혜련의 삶이 있는 풍경]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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