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셔온 글 모음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와 長毋相忘(장무상망)

highlake(孤雲) 2026. 1. 14. 12:28

 長毋相忘(장무상망)은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제주도 유배시절인 1844년에 우선 이상적(藕船 李尙迪, 1804-1865)에게 그려준 세한도(歲寒圖, 국보 제180)에 찍혀 있는 인장입니다.

 세한도(歲寒圖는 추사 연구의 대가였던 후지츠카 지카시(藤塚鄰)가 일본에 가져간 것을 근대 최고의 서예가인 소전 손재형(素筌 孫在馨, 1903-1981) 1944년 전쟁의 아수라장 속에서 일본에 건너가 그를 설득해 가져온 작품입니다.

 

그 후 후지츠카의 집은 미군 폭격에 잿더미가 되었고, 그가 소장했던 많은 추사 관련 작품도 한 줌의 재가 되었습니다. 존추사실(尊秋史室)이란 당호(堂號)를 썼던 손재형 선생의 열정 덕분에 세한도(歲寒圖는 비극적 운명을 모면한 것입니다.

 

세한도(歲寒圖에는 뿐만 아니라 스승과 제자 사이에 전해지는 아름다운 마음이 담겨 있어 시대를 초월한 향기를 지금도 전하고 있습니다세한도(歲寒圖에는 오른쪽위 제목 옆에 찍힌 백문인(白文印), 세한도(歲寒圖와 서문 형식의 글을 이어진 자리에 찍힌 주문인(朱文印), 글 끝부분에 찍힌 주문인 그리고 오른쪽 아래 귀퉁이에 찍힌 주문인 등 4과의 인장이 찍혀 있습니다.

 

세한도(歲寒圖)는 바다 건너 외딴섬에 나락처럼 떨어져 있는 자신을 위해 머나먼 청나라에서 귀한 책을 구해 보내준 이상적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추사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것이라고 합니다. 귀양 온지 몇 해가 흘러 1843년의 어느 날,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포구로 배가 들어왔는데 김정희에게로 짐이 부쳐져 왔다는 것이다. 몸을 일으켜 짐꾼들을 맞은 김정희의 눈은 커지고 언성은 떨려 나왔다. "아니 이게 무엇인가." 짐은 모두 책이었다. 책을 보낸 이는 호(號)가 우선(藕船)이며 자기 문하(門下)의 우수한 역관(譯官)인 이상적(李尙迪)이었다.

그런데 그 책은 추사가 오래 전부터 반드시 보고 싶어 했던 만학집(晩學集)과 대운산방문고(大雲山房文庫)였다. 추사는 이 책들을 구하기 위해 스승으로 섬겼던 청나라 학자 완원의 아들에게까지 기별하여 간청했으나 구하기 어렵다는 회답에 실망을 금하지 못했던 그야말로 귀중한 책들이었다. 그런데 그 책들이 조선 땅 삼천리를 가로지르고 거친 파도를 넘어 제주도에서도 가장 험하다는 대정 땅 귀양지에 보라는 듯 도착한 것이다. 이상적만이 줄 수 있었던 선물이었다. 추사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책들을 더듬었다. 손가락 끝에서 제자이자 문우(文友)라 할 이상적과의 추억이 뜨겁게 묻어났다.

 

추사는 세한도(歲寒圖에서 권세와 이익을 위해 모인 자는 권세와 이익이 다하면 성글어진다.’는 사마천의 말과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는 공자의 말씀을 들어 성인께서 특별히 소나무와 잣나무를 칭찬한 것은 단지 시들지 않는 곧고 굳센 정절 때문만이 아닐 것 입니다.

 

'겨울이라 마음속에 느낀 바가 있어 그런 것이다.’라는 말로 이상적이 세속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의리를 갖고 있음을 칭찬하였습니다. “고맙네! 우선, 이 세한도(歲寒圖를 보게나(藕船是賞)” 이상적은 이 작품을 받아들고 눈물을 흘리며 추사에게 "! 제가 어떤 사람이기에 권세나 이익을 쫒지 않고 스스로 초연히 세상의 풍조에서 벗어났겠습니까? 다만 보잘것없는 제 마음을 스스로 그칠 수 없어 그런 것입니다"라는 편지를 올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작품 오른쪽 귀퉁이에 '길이 스승님의 가르침과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뜻을 담아 장무상망(長毋相忘) 인장을 찍어 스승을 향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남겼습니다.  또한 그는 세한도를 청나라에 가지고 가 그곳 문인 16인의 글을 받아 스승의 뜻을 기렸습니다. “우선! 이런 일은 세상에 언제나 있는 일이 아닐세”(세한도의 추사글)

 

아닙니다. 스승님! 이 모든 것은 정치판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맞지 않으므로 저절로 맑고 깨끗한 곳에 계신 분에게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이 그림과 글을 본 사람들이 제가 정말로 속된 세계에서 벗어나 권세와 이익의 밖에서 초연하다고 생각할까 두려울 뿐입니다. 어찌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당치 않은 일일 뿐입니다.” (이상적이 추사에게 올린 편지글에서)

 

이 인장에 쓰인 장무상망(長毋相忘)은 한나라 때 동경(銅鏡)에 보이는 장무상망 장상사 무상망(長相思 毋相忘, 오랫동안 서로 그리워하고 서로 잊지 않다불구상견 장무상망(久不相見 長毋相忘, 오랫동안 서로 보지 않아도 길이 잊지 않다) 견일지광 장무상망(見日之光 長毋相忘, 떠오르는 햇빛처럼 길이 서로 잊지 않다. 등의 글귀와 감천궁(甘泉宮)에서 출토된 장무상망이 새겨진 기와에서 빌어온 것으로 인장의 형태를 네모나게 하고 자법(字法)을 반듯하게 바꾼 것이라고 합니다. 장무망상은 '당신의 고마움을 오래도록 잊지 않겠다'는 다짐의 표현이기도 하다.

 

여기서 ()자는 없다’ ‘말다라는 뜻으로 자와 통하는 글자입니다. 이 인장은 추사는 물론이며 추사의 스승인 담계 옹방강(覃谿 翁方綱, 1733-1818)과 추사와 동갑내기인 아들 성원 옹수곤(星原 翁樹崑, 1786-1815)에게도 같은 글귀의 인장이 있습니다또 추사의 평생지기인 이재 권돈인(彛齋 權敦仁, 1783-1859)과 추사 학예파의 형당 유재소(蘅堂 劉在韶, 1829-1911), 역매 오경석(亦梅 吳慶錫, 1831-1879) 등도 이 글귀의 인장을 즐겨 사용했다고 합니다.

 

헌종이 소장한 인장을 모은 보소당인존(寶蘇堂印存)에도 비슷한 인장이 많이 실려 있다고 합니다. 이상적이 청나라 문인들이 세한도(歲寒圖에 남긴 글을 낱장으로 베껴 놓은 둘째 장과 셋째 장 그리고 송나라 신기질(辛棄疾, 1140-1207)의 사() 축영대근(祝英臺近)을 낱장으로 쓴 둘째 장과 셋째 장을 잇는 부분에도 같은 인장을 찍었습니다. 

 

세한도속 한 귀퉁이에 자리하고 있는 이 장무상망(長毋相忘)의 붉은 색 네 글자는 스승에 대한 제자의 도리는 무엇이며 또 세속 권력이나 이익과는 무관하게 몸과 마음의 의리를 지키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듯 한 인장입니다.

 

장무상망(長毋相忘)’은 이처럼 스승 추사 김정희와 우선 이상적의 변치 않는 의리와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인장입니다

 

출처 : 에나 물 안 개구리와 유유자적

'모셔온 글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평범한 일상생활이 가장 이상적인 경지 : 추사 김정희  (1) 2026.01.16
인간미(人間味)  (0) 2026.01.16
시치미를 떼다  (0) 2026.01.12
시운(時運)과 천명(天命)  (2) 2026.01.11
어머니의 감사  (1) 2026.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