狡兎死良狗烹(교토사양구팽)
"토사구팽" 이란 말의 유래를 아시나요?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 오(吳)나라와 월(越)나라는 서로 원수처럼 지내며
40여년을 전쟁으로 보냈는데 처음 오나라 왕 합려(闔閭)가 월나라를 공격
하였다가 참패하고 죽은후, 그의 아들 부차(夫差)가 왕위를 계승하여 父王의
원수를 갚기위해 몇년간의 절치부심 끝에 다시 월나라를 공격하여 승리하면서
전쟁에서 패한 월나라 왕 구천(句踐)을 오나라로 끌고가자 월나라의 유능한
책사(策士)인 범려(范려)도 월왕을 따라 오나라에 가서 월나라 왕의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자신이 사랑하던 여인 서시(西施-중국의 4대 미인 중 한명)와
많은 재물을 오왕에게 바쳤답니다.
미인과 재물을 받은 오왕 부차는, 오나라 군사(軍師) 손무(孫武ㅡ손자병법을 쓴
오나라 책사)와 재상 오자서(伍子胥)의 " 월나라 왕 구천을 반드시 죽여야 한다 "는
간언(諫言)에도 불구하고 그를 살려 주면서 자신의 노예로 살도록 명했다지요.
그리하여 목숨을 부지한 월나라 왕 구천이 토굴에 기거 하면서 오왕의 노예로
3년여를 살다가 월나라로 돌아온후 복수를 위해 20여년을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각고끝에 오나라를 공격하여 오왕을 죽이므로서 40여년에 걸친 두나라 사이의
긴 전쟁이 끝나고 나라가 어느정도 안정이 되었을때 월나라 책사 범려가 재상
(宰相)인 문종(文種)에게
" 飛鳥盡良弓藏(비조진양궁장)
狡兎死良狗烹(교토사양구팽)
" 나는 새를 다 잡으면 좋은 활은 창고에 버려지고
토끼사냥이 끝나면 좋은 사냥개도 삶는다고 했지요.
우리 주군의 성격이나 관상을 보면 고난은 함께할수 있어도 즐거움은 남과함께
할수없는 사람이므로 더이상 월나라에 있다가는 우리 두사람은 그의손에 반드시
죽임을당할 것입니다.
그러니 나와 함께 제(齊)나라로 갑시다."하고 제의 하였으나 문종이 거부하여 범려 혼자
제나라로 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월나라에 남은 문종은 반역혐의로 월왕 구천이
자결을 명하며 보낸 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제나라로 떠난 범려는 그곳에서
사업에 크게 성공하여 상성(商聖ㅡ성인(聖人)의 반열에 오른상인)으로 추앙을 받는 등
경제인의 元祖가 되었으며, 그의 사업방식은 오늘날 대기업이나기업집단(재벌 또는
Group)의 효시가 되었답니다.
ㅡ요즘 우리가 자주 듣는 "兎死狗烹"(토사구팽) 이란 고사성어는 일부에서는 漢나라
개국 공신인 한신 (韓信) 장군이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에게 죽을때 했던 말이라는
說이 있으나 그보다 약 200여년 앞선 BC 464년 경으로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에
범려가 문종에게 했던 말 "狡兎死良狗烹" (교토사양구팽)에서 비롯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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