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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떠난 이들의 물건

highlake(孤雲) 2025. 11. 30. 12:43

살며 사랑하며 떠난 이들의 물건

백운 곽 영 석  kb0747@hanmail.net)

 

2000년 이후 직업을 분류하는 코드가 3천 7백여 개가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AI 조종사나 드론 조종사, 유품 관리사, 디지털 장례사, 배달업무를 진행하는

업종도 16가지로 세분화 되어 전문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제 무엇이든 한가지 재주만 있으면 살 수 있는 세상이다.

특히, 외국에서는 이미 9백여 년 전부터 활성화되던 망자의 유품을 관리 처분하는

유품관리업이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지방단위까지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그 때문에 망자가 사망하면 가구나 옷이며 반반한 가전제품과 애장품까지 싸잡아

태우거나 쓰레기로 버리는 일이 이제는 조금 줄어들 듯싶다.

자수성가한 많은 젊은 사람들은 부모가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할 즈음이면 지난날을

되돌아보고 ‘우리 어머니 비단옷 한 벌 입지 못하고 가시네. 우

리 아버지 우리가 입던 헌 옷만 입다 가시는데 양복이라도 한 벌 해 드려야지.’하고

입지도 못할 옷을 장만하여 병상 옆에서 안겨드리는 경우를 몇 번 보기도 했는데,

모두가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그 자식들도 잘 안다.

그래서 마지막 입고갈 수의를 비단으로 짓기도 하고 황금 녹인 물을 입힌 삼베

수의를 몇천 만 원씩 주고 구입해 염습을 하기도 한다.

 

요즘처럼 감기를 앓는지 코로나를 앓는지 며칠 끙끙대다가 화장터로 옮길 무렵에야

통보를 받고 허둥지둥 유가족 한두 명만 참석하는 재난 수준의 주검 처리는 이미

망자의 존엄과 예의와는 관계없이 쓰레기처럼 소각되는 상황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고부터는 언제 죽을지 몰라 주변을 정리하면서 산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자기 애장품을 후배나 제자를 불러서 하나둘 선물하는 예가 바로 그것이다.

서로가 부담이 없고 받는 이도 고맙고 주는 이도 선물로 간직할 사람을 정하니 마음

편할 수 있다.

요즘에는 컴퓨터는 물론, 악기나 기르던 난 화분까지 주고받는 모양이다.

 

나도 지난 2003년 원로 사학자로부터 대장경 320권을 받았다.

그분이 공부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책갈피를 넘길 때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생각을 하면 다음 페이지를 넘기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그동안

책을 읽었다. 원로 작가 몇 분은 남겨진 책과 애장품을 대학도서관에 기증 의사를

물었는데, 헌책은 모두 버리고 새 책만을 달라고 해서 망설이고 있다고 하셨다.

개화기에 문인들이 펴낸 초판본은 기천만 원에서 1억 대를 홋가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도서관에서는 서지 관리상 고서적의 취급은 냄새나는 유품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사실 80연대 초에 각 도서관에 기증한 내 저서 16종이 그대로 보관되어 관리되는

곳이 거의 없다.사촌 아우들이 근무하는 종합대학 사정을 들어보니 일 년에 몇 차례

대출 과정에서 훼손되거나 책갈피의 훼손이 심한 도서는 분기별로 골라서 폐기처분을

한다는 말을 들었다.

‘작품성보다는 책의 장정에만 신경을 써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 것도 그 때문이다.

 

20여 년 가까이 경기도 하남에서 전국 6천 개 매장을 동원해 윤달 수의 장사를 하던

친구는 장사를 시작할 때마다 스님들을 앞세워 광고부터 시작을 했다.

이른바 명당론에 황금 수의를 입고 가시는 부모의 몸에 기가 서린다며 전국 어디서든

당일로 받는 2원화 택배 시스템을 개발한 사람이다.

주문과 동시에 ktx편으로 해당 지역에 도착하면 해당 지역에서 바로 받아 배송하는

당일 특급배달이다.돈을 벌어 인도네시아에 호텔까지 짓고 세를 불려 나가더니 욕심이

너무 과했던지 하늘나라에서도 수의 사업이 필요했던가 지난 연초에 아침에 잠을

자다가 불시에 불려갔다.

“이거 정말 황금 수의가 맞아요?”

“보여드려요? 이거 한번 펴고 접을 때마다 한 돈씩 가루가 떨어 지는데..”

“그래도 확인하고 싶어요.”

이 황금 수의를 확인하기 위해 찾아오는 분들에게 수의를 보여주고 다시 갈무리하며

싱글벙글 웃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며칠 전에는 원로 여가수 한 분이 남편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전화를 하셨다.

남편 기일을 앞두고 한두 가지씩 버리곤 하였는데 3주기가 되어서는 옥돌 벼루와

양복 몇 벌이 남더란다.

옥돌 벼루는 성균관이 주최하는 한시(漢詩) 백일장대회에 나가 문중 어른으로부터

수상 기념으로 받은 것으로, 평소 애지중지하던 애장품이다.

양복은 음반 회사 대표가 선물한 것이라는데 면양의 가슴 털로만 직조한 순모라며

한 번 입어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다는 것이다.

“아,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회장님이 한번 입어보실래요? 입어요. 맞으면 그냥

입으시고”

“예? 형님, 유품을 왜 제가 입어요?”

“그러지 말고 한 번 입어봐요. 몸집도 비슷하고 키도 비슷해서 대충 맞을 것 같아.”

장롱 옷집에서 꺼낸 양복 상의를 건네주셨다.

거실 한쪽 벽에서 나를 바라보는 형님의 영정을 얼핏 보다가 겸연쩍어 물었다.

“형님, 제가 입어봐도 되겠습니까?”

“아, 걱정하지 마. 회장님과는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지금처럼 회장님이 몸이 나

있었다면 아마 불러서라도 주었을 거야. 그때는 몸이 좀 말랐었잖아.”

“제가 말랐었던 적이 있었나요?”

그동안 몇 번을 장롱에서 꺼냈다가 넣었다가를 반복하신 모양이다.

“맞춤옷 같네. 됐어. 회장님이 입으시면 되겠다.”

아이들이 양복과 함께 입으시라며 준비해 두었던 와이셔츠도 덤으로 내놓으신다.

 

극단 가교의 최연식 대표의 유품도 한 점 가지고 있다.

방이동 호프집에서 ‘형이 하나 가지고 있어라.’ 며 준 트럼펫이다.

악기를 다룰 줄 모르지만, 거문고와 가야금, 북과 꽹과리가 2개, 벼루가 1개

서예가 김사달 박사가 준 파리가 들어간 호박이 한 개 있다.

옛날 같으면 고물상에 거져줄 물건들이요 그냥 내 버릴 물건들이다.

코로나로 부부가 사망한 집 처소를 맡으며 유가족에게 물건 전체를 기탁받은

유품 관리 업체가 청소를 하고 도배와 장판 전기기구를 다시 교환하다가 벽 속에

숨겨 있던 편지뭉치를 발견한 모양이다.

“형님, 이 편지 책으로 내면 잘 팔릴 것 같아요. 너무 애절하고 속 깊은 이야기가

많아서....”

“유가족들에게 돌려줘.”

“자기들도 모르는 가족 편지라고 하는데요.”

“그럼, 언제 한번 보자. 개인 신상이 너무 노출되면 안 되니까.”

이 친구들이 작업하는 모양을 보면 일사분란 하다.

먼저 일하기 전 후증 청소를 하고 나서는 침대 주변의 이불보와 핏물 같은 유류

품을 먼저 수거하고 장과 책상, 옷가지, 주방 살림 같은 것을 정해진 순서에 따라

수습한다.모든 물건이 수습되면 그때부터 2차 용역팀이 와서 도배와 장판 전열

기구들을 교체하며 마무리한다.

1천 5백만 원으로 이 사업을 시작한 친구는 이제 직업 6명에 연 매출 10억 원의

꿈을그리고 있다.

장묘업과 애견 장례식, 컴퓨터상에 지우고 싶은 이력이나 나쁜 이미지를 지워주는

디지털 장례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참으로 신선한 생각이다. 발상의 전환이 가져온 내일의 비젼 있는 사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