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 시대 시인 백석은 천재적인 재능과 훤칠한 외모로 당시 모든 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설에 의하면 그가 길을 지나가면 여인들이 자지러졌을 정도라 했습니다.
그가 가장 사랑했던 여인, 기생 김영한과의 러브 스토리는 '로미오와 줄리엣' 만큼이나
가슴이 아리는 이야기입니다.
김영한(金英韓,1916~1999)은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집이 가난하여 16살의 어린
나이에 몸이 약한 신랑에게 팔려간다.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는 사이에 남편은 우물에 빠져 죽고 만다.
그 후 집을 나온 그녀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진향(眞香)이라는 이름으로 기생의
길을 걷는다.
기생이 된 그녀는 가무와 궁중무를 배워 서울의 권번가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잡지에 수필을 발표할 정도로 미모와 시와 글, 글씨, 그림에도 재능이 뛰어난 기생이였다.
스물 세 살 때 흥사단과 조선어학회에서 활동했던 스승 신윤국의 도움으로 일본 도쿄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스승이 투옥됐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해 함흥감옥을 찾아가지만 면회를
거절당하게 된다. 그리하여 신지식 여성에서 다시 기생의 길을 걷게 된다.
백석은 함흥 영생여고에서 영어교사로 재직 하던 1936년, 회식 자리에 나갔다가 기생
김영한을 보고 첫 눈에 반하게 됩니다.
이 잘 생긴 로맨티스트 시인은 그녀를 옆자리에 앉히고는 손을 잡고, "오늘부터 당신은
영원한 내 여자야.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기 전까지 우리에게 이별은 없어." 라는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백석은 이백의 싯귀에 나오는 '자야(子夜)'라는 애칭을 김영한에게 지어줬다고 합니다.
그렇게 둘은 첫눈에 사랑에 빠져 연인이 됩니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도 장애물이 등장합니다.
유학파에, 당대최고의 직장인 함흥영생여고 영어선생 이었던 백석의 부모는
기생과 동거하는 아들을 탐탁치 않게 여겼고, 강제로 다른 여자와 결혼을 시켜 둘의
사랑을 갈라놓으려 합니다.
백석은 결혼 첫날밤에 그의 연인 자야에게로 다시 돌아갑니다.
그리고 자야에게 만주로 도망을 가자고 제안합니다.
그렇지만 자야는 보잘 것 없는 자신이 혹시 백석의 장래에 해가 되진 않을까 하는 염려로
이를 거절합니다.
백석은 자야가 자신을 찾아 바로 만주로 올 것을 확신하며 먼저 만주로 떠납니다.
만주에서 홀로된 백석은 자야를 그리워하며 그유명한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짓습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 푹푹 눈이 내린다.
나타샤를 사랑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즈녁히 와서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서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내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그러나 잠시 동안 이라고 믿었던 이별은 영원한 이별이 되고 맙니다.
해방이 되고 백석은 자야를 찾아 만주에서 함흥으로 갔지만 자야는 이미 서울로
떠나버렸습니다.
그 후 3.8선이 그어지고 6.25가 터지면서 둘은 각각 남과 북으로 갈라져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됩니다.
이후 백석은 평생을 자야를 그리워하며 북에서 1996년 사망하게 됩니다.

남한에 혼자 남겨진 자야는 대한민국의 3대 요정 중 하나인 대원각을 세워 엄청난
재력가로 성장합니다.
자야는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아 대원각을 사찰용도로 시주하고
법정스님으로부터 ‘길상화’라는 불명(佛名)을 받습니다.
자야는 당시 시가 1,000 억원 상당의 대원각을 아무런 조건없이 법정스님께 시주를 했는데
그 대원각이 바로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사찰 '길상사'입니다.
자야는 길상사 법회에 참석한 수천 명의 대중 앞에서 "저는 불교를 잘 모르는 죄 많은
여자입니다. 제가 대원각을 절에 시주한 소원은 이곳에서 그 사람과 내가 함께
들을 수 있는 맑고 장엄한 범종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 입니다." 라고 말했다.
“1,000억원 상당의 대원각 전 재산을 시주한 것 아깝지 않았느냐? ”라는 한 신문사 기자의
질문에 자야는 이렇게 대답했다.
"1,000억원 재산이 ‘백석’ 그 사람의 시 한 줄만도 못해요.“라고 말했다.
평생 백석을 그리워했던 자야는 폐암으로 1999년 세상을 떠납니다.
김영한은 임종을 앞두고 "내가 죽거든 화장하여 눈이 하얗게 내리는 날, 눈 위에 유골을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겼는데, 이는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한 구절처럼
눈 덮인 산골에서 함께하고 싶다는 소망을 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출처 : 코리아일보, 경기일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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