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業) 세탁
업은 받는 것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점은 만드는 대목이다.
어떤 업을 어떻게 짓느냐는 것이 삶의 도정 속에서의 숙제이다.
새해를 맞을 때마다 우리는 복을 많이 받으라고 인사를 나누지만
지금은 많은 불자들이 북 많이 지으라고 인사를 하는 것도 그 이유에서이다.
세상에는 선과 악이 존재한다.
양심을 어기거나 양식이나 보편적인 정서에 어긋날 때 사람들은 나쁘다고 말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기준을 마련하는 일이 매우 미묘한 대목도 있지만
선과 악의 문제는 인류 역사 속에서 늘 윤리적 잣대가 되어왔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인류의 죄가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는 선악의 양면성을 함께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매우 적절한 시사를 준다.
불교에서는 또 선과 악 외에 무기無記라는 것도 말한다.
무기란 선도 악도 아닌 것을 가르킨다. 이 선과 악 그리고 무기 ,
이 세 가지로 사람들의 모든 짓은 가름할 수 있다.
하지만 어 세 가지가 모두 본디한가지 마음에서 우러난다고 보는 것이 불교의 시각이다.
그래서 선과 악이 본디 하나라고도 하고 없다고도 강조한다.
그러나 그것은 선악을 부정하거나 굳이 나눌 필요가 없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악을 선으로 바꾸어 나가는 사악취선擔惡取善을 계도하려는 의미를 담고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어린 아이에서 어른에 이르기까지 부처도 못되고 신도 아닌 사람은 잘못을 저지른다.
문제는 굳이 공자님 말씀을 들추지 않더라도 잘못을 저지르고도 잘못했는지를
모른다거나 알아도 고치려 들지 않는 데에 있다.
그러나 정작 알아야 할 것은 그렇게 넘어 가버린 잘못이 결코 하나도 그냥 묻혀
버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적다는 것이다.
녹화가 되듯이 자기 마음속에, 무의식 속에 자리잡아 언제든지 재생이 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신 분이 바로 부처님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업이란 바로 이것을 말한다.
태어나면서부터의 불평등을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뜻이나 일종의 시험으로 여기지 않고
이것으로 해석한다
업은 받는 것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점은 스스로 만든다는 대목이다.
어떤 업을 어떻게 짓느냐는 것이 삶의 도정에 있는 우리의 숙제이다.
새해를 맞을 때마다 사람들은 ꡒ복 많이 받으라”고 서로 인사를 나누어 왔지만,
지금은 많은 불자들이 서로 ꡓ복 많이 지으라”고 인사를 하는 것도 그 이유에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악업을 도무지 짓지 않을 수 없다.
악업에는 열 가지가 있다. 살생, 투도, 사음은 몸으로 짓는 죄이다.
쌍소리 , 거짓말, 이간질, 아첨하는 말은 입으로 짓는 죄이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은 뜻으로 짓는 죄이다.
그러나 수행은 이 악업을 선업으로 변모시키는 힘이 있다.
죄를 씻어 줄 수 있는 존재는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다.
일백 겁 동안 지 은 죄도 한 생각에 모두 씻을 수 있음은 그것이 마음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악업을 그나마 최소화할 수 있 방법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이 곧 참회이다.
참회란 잘못을 깨닫고 고쳐 나가는 것이다.
겉으로만 잘못한 체 하는 것은 이참理體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그와는 반대로, 속으로 혼자서만 뉘우칠 뿐이고 사과하지 않는
태도는 사참事熾이 안 된 것이다.
아침에는 원력을 세우고 저녁에는 참회하는 자세에서 선심仙心은 일구어진다.
반성할 줄 아는 마음이 곧 선공仙供이다.
오해와 원한을 풀고 화해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첫걸음은 상대방이 누구이든지 자기
참회의 출발점이 된다.
역사적으로 큰 업적을 쌓았던 인물도 제 잘못을 깨달아 물러설 때를 놓치는 바람에
비극적인 종말을 맞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것은 한 가정의 조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자기가 잘못한 부분을 스스로 뉘우치고 새롭게 태어날 자세를 갖는다면
그 가정은 위험하다가도 다시 건강해질 수 있다.
그러나 서로 자기의 잘못은 알지 못하고 상대방의 허물만 눈 여겨보고 따지려 든다면
그 가정은 파괴의 위험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한 개인의 경우라고 해서 여기에서 예외일 수가 없다.
잘못을 참회할 줄 아는 자세를 지닌 사람만이 타락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일어설 수 있다.
요즘 들어 부쩍 더 사회에서 아집과 독선이 지배하는 것을 본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이겠지만 이러한 현상이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지는 성싶다.
나’는 절대선, 저 쪽은 절대악-상대방은 모든 것이 잘못되어 있고
나는 모든 것이 옳다는 태도가 갈등을 만들고 죄업을 쌓는다.
비록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참회할 줄 모르는 죄인은 정말 미워할 수밖 에 없게 된다.
돈 세탁이란 말은 나쁜 의미로 쓰이고 있지만, 그 말에 빗대어 ‘업 세탁’ 이란 말을
생각해 본다. 우리가 목욕을 통해 몸을 씻어내듯이 우리는 때때로 참회를 통해 업을
씻어내야 할 것이다.이 업 세탁만이 우리의 내일을 밝게 하고 복을 부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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