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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가면] 호랑이는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highlake(孤雲) 2025. 7. 18. 12:54

 

벌써 16년 전 새내기 대학원생 시절의 일이다.

나는 학부를 졸업하고 곧바로 같은 대학의 대학원에 입학한 낡은 신입생이었다.

멀리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강의실 창문에는 익숙한 노을이 붉은 커튼을

만들고 있었다. 그날 특강 강사로 초청된 한 소설가는 우리에게 낙동강의 뜻을

묻는 것으로 화두를 던졌다. 그즈음의 나는 소설을 쓰겠다는 구실로 집에서 독립해

낙동강 하구 인근에 살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특강이 이어지는 내내 부끄러운 감정이 들이닥쳤다.

낙동강의 뜻을 모르기도 했지만 내 부끄러움은 지명의 의미를 궁금해한 적조차

없었다는 사실에서 온 것이었다.

 

그런 감상도 오후 내내 머금던 빛을 조금씩 잃어가는 강물처럼 흐릿해지고 거나한

뒤풀이가 이어졌다. 우리는 에덴공원의 솔바람이라는 오래된 음악 카페에서 술을 마셨다.

등나무 아래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동안 제법 취했던 밤,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강변을 걸었다.

가락국(금관가야)의 동쪽을 흐르는 강이라는 뜻이었구나.

강물은 어둠 속에서도 흐르기를 멈추지 않고 있었다.

문학이란 어쩌면 이름을 묻는 일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사소하고도 굉장해서

벌게진 얼굴로 벅차오르던 하루였다.

 

내가 존경하는 한 문학평론가는 간혹 부산에 올 때마다 내 집필실에 머물렀다.

대학원을 마칠 즈음 새로 구한 집필실은 부산 동구 범일동과 남구 문현동 사이를

흐르는 동천 하류에 접해 있었다.

동천은 부산진성의 동쪽을 흐르는 천이라 하여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선생의 고향은 문현동이었는데, 부산에 올 때면 어린 시절 당신이 거닐던 그 강가로

곧장 향했다.

동천 인근의 지명은 흥미롭게도 호랑이와 관련한 흔적이 많았다.

범이 내려와 물을 마시는 시내라 하여 범내, 범천, 범일, 범곡 등의 이름이 생겼다.

우리는 그 이름들을 더듬어 살피는 것도 모자라 문현 시장의 골목골목 누비고서야

직성이 풀렸다.

동천 인근은 수년 내 조(兆) 단위의 거대 자본이 도로를 새로 깔고 대단지 아파트를

짓고 천을 정화한다고 한다. 미래의 동천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

어떤 이름이 생기고 남게 될지 가늠하기란 쉽지 않다.

나는 지금도 종종 그 길을 지나칠 때면 오래된 풍경을 사진으로 담아 선생에게

보내기도 한다.

 

부산은 가마 부(釜) 자에 뫼 산(山) 자를 쓰는데, 이는 먼바다에서 바라보는 시점에서

지어졌다는 설이 있다.

동구의 좌천동과 범일동 사이에 자리한 증산(시루산)의 모양이 바다에서 바라보면 가마솥

모양처럼 보인다 해서 붙은 이름이라는 것이다.

증산은 한때 부산진성이 자리했던 군사 요충지이기도 하다.

 

증산이 부산 이름의 유래라는 건 하나의 가설인 만큼 다른 후보도 많다.

가마 부(釜) 자는 인조 21년(1643년)에 기록된 한자어이지만 그보다 앞선 고려 공민왕

17년(1368년)에는 부유할 부(富) 자를 사용해 부산포(富山浦)라 쓴 기록이 있다.

어쨌든 부산에는 바다만 있는 게 아니다.

울창한 산림에는 호랑이들이 노닐던 개울이 있었다.

 

시대에 따라서 풍경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풍경이 달라지는 사이에도 변함없이 남은 이름들이 있다.

이름을 묻는 일은 사소하지만 우리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 중요한 것들을 발견하고는 한다.

부산의 범내골에서 호랑이를 찾는 것은 우스운 일이겠지만

범내골의 호랑이가 사라진 이유를 묻는 일은 더없이 진지한 질문이 될 것이니 말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는 말은 부산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호랑이도 이름을 남긴다. 산과 강과 바다가 어우러진 이 도시의 이름으로.

                           - 오성은 소설가, 동아대 초빙교수 -

<조선일보 오피니언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