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신문 스크랩 229

사람 보는 잣대, 의(議)와 논(論)

‘말’이라고 다 같은 ‘말’은 아니다. 말에는 일하는 말이 있고 말을 위한 말이 있다. 일하는 말을 의(議)라 하고 말을 위한 말을 논(論)이라 한다. 이 둘을 나누는 잣대는 하나는 일[事]이고 또 하나는 미래와 과거이다. 의(議)는 ‘의견’이라고 옮겨야 하는데 정확하게는 앞으로 할 일에 대한 의견을 의(議)라고 한다. 책임 당국자들이 그리는 미래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의(議)다. 반면에 논(論)은 지나간 것에 대한 말이다. 반고의 ‘한서’나 사마천의 ‘사기’는 대표적인 논(論)이다. 또 큰 사고가 났을 때 복구 대책은 의(議)이고 사고 책임 소재를 따지는 것은 논(論)이다. 의(議)는 미래를 향한 것이고 논(論)은 과거를 향한 것이다. 법률 분야는 자연스럽게 논(論)이 지배한다. 법조인 출신들이 잘하는 ..

절절하사(折節下士)

절절하사(折節下士)란 큰 뜻을 품은 사람이 자기 주장이나 생각을 굽히고 여러 선비들에게 자기를 낮춘다는 뜻이다. 하사(下士)는 하인(下人)이라고도 하는데 남에게 자기를 낮춘다는 뜻이다. 조선 임금 중에서 이를 잘 갖추었던 임금은 태종이다. ‘태종실록’ 총서에는 젊은 시절 태종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고려 말 태종은 세상을 구제할 뜻이 있어 능히 자기 주장이나 생각을 굽히고 여러 선비들에게 자기를 낮추었다.” 이는 상투적 표현이 아니다. 여러 형제들 중에 유독 이방원에게 많은 사람이 따른 이유를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리더가 절절하사(折節下士)할 때라야 많은 이들이 따르게 된다. 많은 사람이 따르게 하는 또 한 가지는 너그러움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관즉득중(寬則得衆)이라고 했다...

아주 보통의 작별

죽음은 꼭 절망이며 어둠일까. 김영민 교수의 책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게 좋다’에는 어려운 시절이 오면 한적한 곳에 문을 잠그고 홀로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렇게 온전히 하루를 보내면 불안한 삶이 오히려 견고해지는 감각이 생기는데, 그 느낌이 자기 삶의 단단한 기반이라는 것이다. 죽음이 이토록 명징한 것이라면 태어남과 동시에 우리는 ‘사는 게’ 아니라 ‘죽어가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 회복 불가능한 불치의 병에 걸려 긴 고통을 그만 멈추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조력 사망이 가능한 스위스의 한 단체로 향하는 여정을 지켜봤다. 영상에 달린 수많은 댓글 속, 다양한 의견과 가슴 아픈 사연을 읽으며 나는 국회에서 여전히 계류 중인 ‘조력존엄사법’이 초고령화 시대에 더 ..

한센病 재일교포 시인 김하일을 아시나요?

지난해 6월 10일 세상을 떠났다(depart this life). 처절하고 비통했던 삶 (desperate and sorrowful life), 버겁게 버텨오던 그 고된 세월의 고삐를 스르르 놓았다(let go of the arduous years). 96년 인생 80년 넘게 살았던 일본, ‘조센진 문둥이(ethnic Korean leper)’로 갇혀 지냈던 어느 산중턱 요양원에서 숨을 거뒀다(breathe his last breath). 일제강점기(under Japanese colonial rule), 경상북도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be born into a poor farming family). 하루 세 끼 때우기도 어렵던 시절, 이리저리 치이다가 현해탄 너머 일본으로 휩쓸려갔다. 고작 열세 ..

日다이소·美달러숍, 초저가 판매 이윤 어디서 남길까?

엊그제 세상을 떠난(pass away) 일본 초저가 유통업체(ultra-low-price retailer) 다이소의 창업자 야노 히로타케(80)씨는 “99엔짜리 들여와 100엔에 팔면 1엔이 남는다”는 발상에 사업을 시작했다. 도산한 기업의 재고 상품을 헐값에 사들여(purchase stock products from bankrupt companies at a low price) 싸게 팔다가 일일이 가격표 붙일 시간이 없어 100엔 균일가로(at a flat price) 판매한 것이 사업 모델이 됐다. 미국판 ‘다이소’로는 ‘Dollar General’ ‘99 Cents Only Stores’ 등이 있는데, 이들을 흔히 dollar store라고 부른다. 1달러 염가(cheap price) 판매점이라는 ..

“손을 잡는다, 옛날엔 데이트 지금은 부축”

신문에 노인에 대한 이런 글이 있어 일부를 옮겨 임의 편집해 포스팅해 봅니다. (글의 저자에게는 양해를 구합니다.) .......前略 ‘실버 센류’란 일본에서 전국유료실버타운협회의 주최로 2001년부터 매해 여는 센류 공모전의 이름이다. 실버(silver)는 ‘노년 세대’를 뜻하는 일본식 영어로 머리가 백발이 되는 것에서 따온 단어다. 일본 철도의 노약자석인 ‘실버 시트’가 어원이라고 한다. 실버 시트, 실버 에이지, 실버 인재 센터 등으로 쓴다. 뒤표지에는 이런 말이 있다. “시리즈 누계 90만부 판매! 페이지마다 웃음이 터져 나오는 실버 센류 걸작선.” 편의상 시라고 했지만, 센류라는 장르다. 센류(川柳)는 5·7·5조의 음율을 가진 일본의 정형시로, 음율은 하이쿠와 같지만 하이쿠가 진지한 쪽이라면 ..

지언(知言) 지인(知人)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알지[知言] 못하면 사람을 알아볼[知人] 수가 없다.” ‘논어’ 대미를 장식하는 말이다. 이는 그 사람이 하는 말만으로 그 사람됨을 알아차려야 한다는 말이다. 많은 사람을 부려야 하는 지도자라면 명심하지 않을 수 없다. ‘맹자’에서 공손추가 “말을 안다[知言]는 게 무슨 뜻입니까”라고 묻자 맹자가 답했다. “한쪽으로 쏠린 말[詖辭]을 들었을 때는 반대쪽에 숨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리고, 지나친 말[淫辭]을 들었을 때 그것이 어떤 함정에 빠져 있는지를 알아차리고, 그릇된 말[邪辭]을 들었을 때는 그것이 실상과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지를 알아차리고, 둘러대며 회피하는 말[遁辭]을 들었을 때는 그것이 얼마나 (논리적으로) 궁한지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당대표와 껄..

용의 장자, 비희(贔屭)

음력설이 지났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갑진(甲辰)년 청룡의 해가 시작되었다. 한중일은 ‘용 문화권’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용을 특별한 존재로 대한다. 용 하면 출세를 떠올리는 것도 이러한 문화권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출세를 위해 통과해야 하는 어려운 관문을 ‘등용문’이라고 하고, 열악한 환경을 뚫고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을 ‘개천에서 용 나기’에 비유하기도 한다. 용에게는 아홉 자식이 있다는 ‘용생구자(龍生九子)’ 전설이 있다. 이들은 전통 사회의 관혼상제나 문학, 건축 등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기능하였고, 현대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그중에 비교적 잘 알려진 용자(龍子)는 맏이에 해당하는 ‘비희(贔屭)’다. 외모는 거북을 닮았고, 등에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것을 마다 않는 성격으로 묘사되는 이 영물..

‘경기(景氣)’와 ‘여기(戾氣)’

늘 강아지가 문제였을까. 이른바 ‘개’가 출현하는 한자가 많다. 그중에서도 개가 어디로부터 나가려고 하는 동작과 관련이 있는 글자가 우선 돌(突)이다. 구멍[穴]에서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개[犬]의 모습으로 급한 상황을 그렸다. 다음은 려(戾)라는 글자다. 문[戶] 아래 틈으로 개[犬]가 비집고 나가려는 모습을 그렸다고 푼다. 그로써 이 글자가 얻은 뜻은 ‘비틀어지다’ ‘어긋나다’ ‘뒤집히다’ 등이다. ‘여기(戾氣)’라고 적는 단어가 대표적이다. 이 말은 상황이 비틀어지거나 계속 어긋나다가 폭력적인 행위로 이어지는 현상을 말할 때 자주 등장한다. 동양 의료계에서도 곧잘 쓰는 말이다. 요즘 자주 사용치는 않으나, 어긋나고 비틀어진 상황을 괴려(乖戾)라고 했다. 폭려(暴戾)라는 말도 그런 기운을 지닌 사람 등..

교언후안(巧言厚顔)

'논어’ 학이 편에는 “巧言令色(교언영색) 鮮矣仁(선의인)”이라는 말이 나온다. 대부분 이를 오독해서 “교언영색하는 자는 어질지 않다”고 옮기고 있다. ‘드물다’는 뜻의 선(鮮)을 놓친 때문이다. 선(鮮)을 주목하여 정확히 옮기면 “교언영색하는 자 중에 정말로 어진 사람은 드물다”는 뜻이다. 즉 어진 사람은 당연히 교언영색하며, 문제는 교언영색하는 사람 중에 대부분은 겉으로만 그렇게 하고 속은 어질지 않다는 것이다. 어질지 않다는 것은 사욕(私慾)을 더 중시한다는 말이다. 하나라 왕 태강(太康)이 정사는 돌보지 않고 사냥에 빠져 먼 곳으로 사냥을 떠나 100일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다섯 형제가 걱정하는 노래를 불렀는데, 그중 막내 노래가 ‘서경’에도 전하고 ‘시경’ 소아(小雅) 교언(巧言) 편에도 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