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그림에 文士 20인의 찬사…15m 대작 ‘세한도’ 공개
오늘부터 ‘한겨울 지나 봄 오듯―세한·평안’ 특별展
추사 김정희 '세한도'. 그림: 23.9x70.4cm, 글씨: 23.9x37.8cm. /국립중앙박물관
"우선(藕船·이상적의 호), 이것을 보게.”
1844년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가 유배지 제주에서 붓을 들었다. 외부와 단절된 귀양살이 5년 차.
58세 추사는 마른 붓에 진한 먹물을 묻혀 초라한 집 한 채와 소나무 두 그루, 측백나무 두 그루를 그렸다.
유배지의 자신을 잊지 않고 연경(燕京·지금의 베이징)에서 귀한 책들을 구해다준 제자 우선 이상적(1803~1865)의 인품을 칭송하며 답례로 그려 보낸 것이다.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된 다음에야 송백이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 그대는 나에게 귀양 이전이라고 더 해준 것이 없고, 귀양 이후라고 덜 해준 것이 없다. 이전의 그대는 칭찬할 게 없었지만 이후의 그대는 성인(聖人)의 칭찬을 받을 만하지 않겠는가?”
초고화질로 스캔한 영상에선 추사의 치밀한 필법을 관찰할 수 있다. 한겨울의 황량한 느낌을 바짝 마른 까슬까슬한 붓질로 표현했다. 물기 없는 붓에 진한 먹물을 묻혀 그리는 필법은 추사가 59년 동안 갈고 닦아 이뤄낸 필력에서 나온 것이다. 후지쓰카 지카시, 손재형 등 세한도를 지킨 사람들과 고(故) 손세기-손창근 부자의 기증 뜻을 새기는 공간도 마련됐다. 박물관은 “2부에선 19세기 그림 ‘평안감사향연도’를 함께 전시해 한겨울 추위인 세한을 견디면 곧 따뜻한 봄날 같은 평안을 되찾게 될 거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았다”고 했다.
'세한도'의 늙은 소나무 부분을 확대한 모습. 물기 없는 마른 붓에 진한 먹물을 묻혀 사용한 필법을 확인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민병찬 관장은 “추사가 유배됐던 제주 대정읍은 바람이 너무 세차게 불어서 제주에서도 가장 살기 어려운 곳이다. 그 고난과 외로움, 제자에 대한 고마움을 담아낸 문인화의 걸작이 바로 세한도”라며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무가지보’를 기꺼이 기증해 국민 모두 감상할 수 있게 해준 손창근 선생과 가족에게 깊이 감사드린다”고 했다. 내년 1월 31일까지.
추사가 겪은 세한의 경험과 감정을 이방인의 눈으로 해석한 7분짜리 영상 '세한의 시간' 앞으로 관람객이 지나가고 있다.
영화 제작자 겸 미디어 아트 작가 장 줄리앙 푸스의 작품이다. /고운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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